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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편의점 식 사고를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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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편의점 식 사고를 버려야

입력
2018.01.12 15: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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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최근 제2의 부엌으로 불리며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수 년 전만 해도 식사를 위해 편의점을 찾는 이들은 드물었다.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과 같은 간식거리를 사거나, 시간이 없어 마트를 가기 힘들 때 간단한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다양한 먹거리를 값싸게 제공하는 가성비 최고의 레스토랑 또는 푸드 테마파크로 변신하고 있다. 편의점에는 건강에는 썩 유익하지 않지만 입맛을 자극하는 값싼 음식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러한 편의점 음식들을 보면 최근 정부가 쏟아내는 정책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불합리한 관행을 몰아내고 합리적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정부는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국정지지율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어 높은 국정지지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급증 탓에 자칫 사회 각 영역의 생태계를 왜곡하고 시장의 혼란을 초래하는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단기적 성과에 함몰되다 보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억눌린 국민들의 화를 풀어주고 박수 받는 자극적 정책들을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값 싼 식사거리를 찾는 인구가 늘어나고, 시간에 쫓기어 혼자 식사하는 혼밥족이 늘어나면서 편의점 식사문화가 등장했듯이, 경기도 어렵고 미래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화를 풀어주는 시원한 사이다와 같은 자극적인 정책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정책들은 끊임없이 만들어 질 것이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몇 분만 투자하면 싼 값에 우리의 허기와 미각을 채울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들로 가득한 편의점에 익숙한 우리는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다듬을 시간도 음식이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다. 때로는 인스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는 그 몇 분도 참기가 힘들다. 진지하게 우리의 건강을 고민하고 음식을 고를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없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공조미료로 맛을 낸 자극적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지면, 건강에는 좋지만 밋밋한 맛의 음식을 먹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내고 더 큰 돈을 쓰기는 쉽지 않다. 감칠 맛은 없지만 좀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정책과 마주하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현재의 행복과 속도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에 갓 진학한 학생에게 취업에 대해서 묻고,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에게 결혼에 대해 묻고,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출산에 대해서 묻는 조급증과 그러한 조급증에 기인한 우리의 인스턴트식 사고는 버려야 한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풍부한 경험을 통해 진지하게 그리고 후회없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 나이에 쫓겨 배우자를 선택하기 보다 많은 만남과 고민을 통해서 평생을 함께 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는 배우자를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어떠한 전공을 선택하고, 어떠한 직업을 갖고, 어떠한 배우자를 만나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정해 놓고 끝 없이 질문을 던지며 상대를 위축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전에 없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정권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 또 다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조급함과 쏠림 현상이 자칫 최순실과 같은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 두렵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자. 그리고 필요하다면 쓴 소리도 아끼지 않는 용기를 갖자.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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