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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속성 빼닮은 게임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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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속성 빼닮은 게임의 미래는

입력
2015.05.1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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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로 무장한 게임

전세계 영향력 확대 과정 주목

제국과 유사해 비판적 접근

지배질서 도전 대안게임도 소개

제국의 게임-전지구적 자본주의와 비디오게임 닉 다이어-위데포드ㆍ그릭 드 퓨터 지음, 남청수 옮김 갈무리 발행ㆍ512쪽ㆍ2만 5,000원
제국의 게임-전지구적 자본주의와 비디오게임 닉 다이어-위데포드ㆍ그릭 드 퓨터 지음, 남청수 옮김 갈무리 발행ㆍ512쪽ㆍ2만 5,000원
'오락의 독재에 저항하는 급진적 게임'을 표방하는 이탈리아 활동가 그룹 몰레인더스트리아의 홈페이지(www.molleindustria.org) 첫 화면. 노동 착취 등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키는 게임을 여기서 직접 해 볼 수 있다.
'오락의 독재에 저항하는 급진적 게임'을 표방하는 이탈리아 활동가 그룹 몰레인더스트리아의 홈페이지(www.molleindustria.org) 첫 화면. 노동 착취 등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키는 게임을 여기서 직접 해 볼 수 있다.

1958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 게임 ‘두 사람을 위한 테니스’가 등장한 후, 반세기 만에 게임은 문화콘텐츠산업을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1,170억 1,600만 달러로,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규모에 필적한다. 전세계 게임 인구는 8억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게임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제한된 틀 속에서만 이뤄져 왔으며, 그나마도 긍정적이지 못했다. 특히 한국에서 게임은 그저 아이들이나 가지고 노는 것, 진지하지 못한 것이며 신체적·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디지털 마약’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점에서 새 책 ‘제국의 게임’은 진지하면서도 급진적인 논의를 통해, 게임에 대한 대안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저자인 닉 다이어-위데포드와 그릭 드 퓨터는 게임을 단순한 놀이 대상이 아닌, ‘제국’의 전형적인 매개체로 간주한다.

‘제국’ 개념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저서 ‘제국’에서 빌려온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탈근대 시대의 자본주의 체제를 ‘제국’으로 규정했다. 제국은 ‘전지구적인 금권정치의 지속적인 확장을 꾀하는 기업의 착취에 기초하는 생체권력 시스템’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 자체를 통제한다. 18세기 소설이 중상적 식민주의와, 20세기 영화와 텔레비전이 산업적 소비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됐던 것처럼, 게임은 21세기 전지구적 초자본주의의 복합체인 ‘제국’을 본질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제국의 게임’ 저자들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다. 1부 ‘게임 엔진: 노동, 자본, 기계’에서는 ‘만드는’ 작업의 의미와 주요 구성물을 살펴본다. 복잡하고 체계적인 협업이 필요한 게임 개발은 제국 시대 자본주의의 핵심 활동이라 할 수 있는 ‘비물질노동(상품의 정보적, 문화적, 혹은 정동적 요소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설명된다. 비물질노동이 이뤄지는 게임 개발회사 종종 놀이와 일이 구분되지 않는 꿈의 직장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2004년 거대 게임 퍼블리셔 ‘일렉트로닉 아츠’에서 발생했던 직원들의 초과근무수당 소송을 통해, 이 비물질노동자들이 근무 시간을 넘어 삶의 전시간 동안 활동할 것을 강요받는 코그니타리아트(인지노동자)에 불과함을 드러낸다. 한편, 게임사가 개발한 X박스, 플레이스테이션, 위(Wii) 등의 콘솔 게임기는 이용자의 몸에 연결돼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속적인 지출을 이끌어내는 제국의 생체정치적 기계이다.

2부 ‘게임행위: 가상적인/실제적인’에서는 게임을 ‘하는’ 행위에 주목한다. 가상의 게임 세계는 현실 세계의 차별과 불평등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예컨대 자산을 소유할 수 있는 ‘세컨드 라이프’의 주민들은 부의 축적 정도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는 흑인 주인공을 폭력과 공포의 대상이자 원천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비판 받는다.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의 ‘골드 경작’을 둘러싼 정치학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다. ‘골드 경작자’로 불리는 중국 게임 노동자들은 게임에 접속해 비물질노동으로 게임 속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현금화해 북미 등 부유한 지역에 판다. 실제로 중국의 골드 경작자는 약 10만 명에 이른다. 가난한 중국 노동자들이 골드 경작으로 확보한 골드와 아이템을, 기업은 게임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하길 원하는 북미의 상대적으로 부유한 이용자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이득을 취한다.

저자들은 어떻게 게임이 전지구적 자본의 문화적·정치적·경제적 힘들을 구체화하는지 집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에 대한 저항의 수단도 제공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3부 ‘새로운 게임’에서는 지배적인 질서에 도전하는 대안적 게임 ‘문화’를 소개한다.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 안과 밖에서 저항을 펼친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국제 노동조합이 조직한 디지털 시위가 열리는가 하면, ‘오락의 독재에 항거하는 급진적 게임’을 표방하는 ‘몰레인더스트리아’와 같은 활동가 집단을 통해 주류 게임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운동을 주제로 급진적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제국의 매체’인 게임이 제국을 위협하는 ‘다중의 매체’로도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트와 네그리에 따르면 제국 속에서 살아가는 다중은 제국 밖으로 탈주하는 에너지를 가진 주체다. 따라서 다중의 매체로서 게임은 ‘지금, 여기’가 아닌 ‘또 다른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잠재성을 갖는다.

게임에 대한 급진적 비평인 이 책에서 만나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게임을 하나의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를 갖고 변화하는 문화양식으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현대 사회에서 게임은 단순한 놀이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초자본주의를 반영하고 또 그 안과 밖에서 사회와 게임에 대한 다양한 저항이 이루어지는 다면적 미디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강신규ㆍ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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