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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살해 젊은 엄마 늘어… 위기 가정에 무너지는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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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살해 젊은 엄마 늘어… 위기 가정에 무너지는 모성

입력
2015.10.0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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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살해 피의자 46%가 여성

전체 범죄자 중 여성은 18% 불과

생활고·산후우울증 큰 원인

'괴물 엄마'로 치부할 게 아니라

싱글맘 양육 환경·복지 개선해야

2일 결혼 12년 만에 어렵게 얻은 딸을 생후 53일 만에 살해한 엄마 김모(40)씨가 서울 양천경찰서에 구속됐다. 경제적 문제로 남편(41)과 자주 다투던 김씨는 “이혼하고 혼자 키우다가 안 되면 보육원에 보내겠다”는 남편 말에 “보육원에 보낼 바에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딸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그는 자살할 장소를 찾기 위해 인천 소래포구를 찾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자식을 살해하는 젊은 엄마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에게 ‘괴물 엄마’라는 수식어가 달라 붙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사회적 타살’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약자인 여성들이 경제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비정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위기 가정에 속한 20, 30대 젊은 엄마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경찰청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모두 230건의 자식 살해가 발생했다. 연간 30~40건에 해당하는 수치다. 특히 피의자의 46%가 어머니인 여성으로 나타나 존속살해에서 여성 피의자가 차지하는 비율(12.9%)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절도ㆍ폭력 등 전체 범죄의 피의자 가운데 82%가 남성이고 여성은 18%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도 차이가 확연하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권익센터장은 “모성애는 여성들에게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마지막까지 남는 본능”이라며 “10개월 동안 기다려 낳은 아이를 살해하게 하는 사회적 원인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아이를 포기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올해 6월 서울 광진구에서 신생아를 살해하고 시신을 상자에 담아 택배로 친정 집에 보냈다가 검거된 이모(35ㆍ여)씨도 난방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월 25만원의 고시원에서 홀로 아이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미혜 센터장은 “경제적 약자인 여성이 홀로 일을 하며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정부가 지원하는 양육비도 월 10만원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고 얻을 수 있는 직업도 비정규직 등에 한정된다”고 말했다.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버리는 10대 미혼모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경찰청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영아 유기는 ▦2010년 69건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 ▦2013년 225건으로 증가했다. 유 의원은 “대부분의 미혼모들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기를 양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의 산후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충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연달아 발생한 자녀 살해의 경우 산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우울증이 범죄의 트리거(방아쇠)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이완정 인하대 아동학과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출산 여성의 최소 10%(4만3,660명)가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3년 산후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여성은 241명에 불과했다. 호르몬 이상과 육아 스트레스로 나타나는 산후우울증은 분노, 피해망상, 자해 등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질환이지만 출산 전ㆍ후 검사는 아직 의무화 되지 않았다. 노충래 교수는 “경제난, 시부모와의 관계, 부부갈등 등 위험 요인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자녀 살해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여성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복지망을 확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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