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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지금 미국 소설의 바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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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지금 미국 소설의 바로미터

입력
2017.08.3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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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직후 콜슨 화이트헤드는 말했다. “난 나를 위해 이 책을 썼다. 내가 잘 쓰면 사람들이 얻는 게 있을 거라는 바람과 함께.” 마이클 라이언스타 제공
이 책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직후 콜슨 화이트헤드는 말했다. “난 나를 위해 이 책을 썼다. 내가 잘 쓰면 사람들이 얻는 게 있을 거라는 바람과 함께.” 마이클 라이언스타 제공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ㆍ황근하 옮김

은행나무 발행ㆍ348쪽ㆍ1만4,000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가의 태생은 그 자체로 문학적 밑천이 된다. 미국 작가 필립 로스, 줌파 라히리가 각각 유태인, 벵골계 이민자로서 정체성을 제 작품에서 끝없이 반복 변주하듯이. 이제는 “훌륭한 내수형 작가”가 되고픈 중년의 작가 김영하가 한때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다 (20세기 한민족의 멕시코 이민사를 그린)‘검은 꽃’과 (분단 현실을 다룬)‘빛의 제국’을 썼듯이.

이제 앞다퉈 국내 번역 소개될 콜슨 화이트헤드 역시 이 계보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그의 데뷔작 ‘직관주의자’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엘리베이터 조사관을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리물, 후속작 ‘존 헨리의 나날들’은 흑인 철도 노동자 존 헨리의 전설에 픽션의 살을 붙였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오가는 다종다양한 소설을 발표했지만 끝내 한방이 없었던 콜슨은 지난해 발표한 이 소설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앤드루 카네기 메달을 받으며 명실공히 대세작가로 등극했다.

작가가 잡은 소재는 전설적인 미국 흑인 해방 조직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노예제가 폐지되기 이전인 1800년대 남부 노예들이 북부의 자유 주나 캐나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던 점조직이다. 인종을 초월해 비밀리에 도망 노예들에게 먹을 것과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북부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준 이들은 스스로를 역장, 기관사로 칭했다. 도망 노예를 승객, 이들의 은신처를 역으로 부르는 등 철도 용어를 은어로 쓰면서 10만명이 넘는 노예를 탈출시켰다.

소설은 이 조직이 동명의 ‘진짜 철도’를 놓았다는 데서 시작한다. 남북을 길게 잇는 노예 탈출 철도가 지하에 뚫렸고 도망자들을 시간에 맞춰 수송하되 이들이 언제 어디에 도착할지는 운명에 맞긴다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와 영화 ‘설국열차’를 섞어놓은 듯한 발상으로 작가는 SF 작가에게 주는 ‘아서 클라크상’(2017)도 받았다.

여기, 행운의 소녀 혹은 미친x으로 불리는 코라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온 할머니 아자리 때부터 남부 조지아 주 랜들가(家) 대농장의 노예로 살고 있는. 어머니 메이블은 목화솜을 딸 수 있고 뛸 수도 있는 딸을 두고 혼자 탈출해 끝내 노예 사냥꾼에게 잡히지 않는 이 농장의 유일한 도망자가 됐고, 코라는 손도끼를 휘두르며 엄마가 남긴 땅을 지켜낸다.

악착같이 사는 그녀 앞에 북부에서 팔려온 남자 노예 시저가 나타나고, 코라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코라는 남쪽에도 ‘지하철도’가 놓여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녀 엄마가 그랬듯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곳을 향해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메이블을 놓친 것을 일생일대 치욕으로 기억하는 노예 사냥꾼 리지웨이가 그들을 추적한다.

우여곡절 끝에 탑승한 지하철도의 규칙은, 열차의 시간표는 그때그때 바뀌며 기차의 행선지는 알수 없다는 것. 북으로 가는 기차에서 그대로 ‘고(go)’를 외치든, 스톱(stop)을 외치고 정착하든 도망자의 의지와 운에 달렸다.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를 거쳐 인디애나로 가는 여정 속에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가 녹아 든다. 다른 남부와 달리 노예제에 변화가 일고 있다고 여겼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흑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실험과 화학적 거세의 역사를,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백인보다 수(數)적으로 많아진, 그래서 위협이 된 흑인을 자기 집으로부터 카운티 한 개 이상은 여행할 수 없게 한 역사를 은유적으로 그린다. 작가는 해리엇 제이컵스, 토니 모리슨 등 흑인 노예 문학의 고전, 17~18세기 미국 역사 연대기를 참조하며 사실 고증에 힘썼다.

그리하여 코라는 탈출에 성공할까. 엄마 메이블은 왜 탈출 후 딸을 찾지 않은 걸까. 단순 명확한 문장, 장르문학 같은 설정에도 이 책이 출간 후 굵직한 영미권 문학상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40쪽이 앞으로 우리의 ‘자유’를 정의할 것” 작가의 첫 국내 번역서를 낸 출판사가 이 책에 붙인 카피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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