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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미영이네 세탁소

입력
2017.02.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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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엔, 시장은 시장뿐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무슨 말이냐면, 온통 물건만 쌓여 있을 것 같은 공간에 집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미영이네는 시장 안에서도 아주 좁은 골목 안에 자리잡은 세탁소였다. 미영이의 뒤꽁무니를 잘 좇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좁아터진 세탁소 안쪽, 빽빽하게 걸린 옷들을 젖히면 사다리가 있었다. 사다리를 오르면 신기하게도 살림집이었다. 작은 들창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두웠다. 미영이네 엄마와 아빠는 등을 대고 일했다. 다림질을 하는 엄마와 수선을 하는 아빠. 그리고 미영이네 삼남매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 천장이 낮은, 꼭 세탁소만큼이나 좁은 방에서 밥을 먹고 숙제를 했다. 나도 그 사이에 구겨 앉아 미영이네 엄마가 쟁반에 담아 올려준 된장국을 떠먹고 시금치나물을 씹었다. 사다리 아래로 미영이가 “엄마, 물 줘!” 소리치면 미영이 엄마도 소리쳤다. “떠다 먹어!” 바느질 솜씨가 좋았던 미영이 아빠는 미영이 옷도 만들어 입혔는데 빨간 체크 주름치마며 곤색 재킷이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하늘하늘한 레이스를 잘라 행커치프까지 만들어 가슴 주머니에 맵시 나게 넣어주었다. 나는 그래서 아파트 단지 앞 세탁소에 들를 때면 자꾸 두리번거린다. 여기엔 사다리가 없을까. 들창으로 노랗게 새어들어오던 저녁 빛이 여기엔 없을까, 하고 말이다. 세탁소 주인은 내 전화번호를 타닥타닥 입력하고 배달주소를 확인한다. 겨울점퍼의 세탁비는 1만2,000원이고 흰 칠을 한 세탁소는 넓고 쾌적하다. 심심하고 단정한 세탁소의 풍경이 아쉬워서 나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그곳을 떠난다. 미영이네 세탁소도 이제는 사라졌겠지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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