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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위기가 기회, 아니 위기만이 기회

입력
2017.05.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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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회사 워크샵에서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B사의 한국지사 대표가 이런 얘기를 했다. “20%의 초거부(자산 1,000억 원 이상)는 경제적 위기(Economic Turbulance) 상황에서 출현한다”. “포브스 100대 기업 랭킹 30%가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뒤바뀐다”.

아울러 이런 예를 들었다. 자동차 경주에서, 직선 주로(走路)를 달릴 때는 그 차의 성능대로 순위가 결정된다. 엔진 성능이 좋은 차들이 더 빨리 달릴 것이고, 그보다 떨어지는 엔진 성능을 가진 차들은 상위 엔진 성능을 가진 차를 따라 잡기란 대단히 힘들다. 그런데 그 순위가 많이 뒤바뀌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코너링’을 할 때. 코너링 상황에서 속도를 너무 내면 주로를 일탈해 버리고, 속도를 줄이면 방향이 틀어지거나 순위에서 뒤처진다. 적절한 속도로 코너링을 해야만 최적의 궤도를 그릴 수 있는데, 그 순간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이는 엔진 성능이 아니라 운전자의 실력과 담력이 좌우한다. 그는 코너링을 해야 할 때가 바로 위기상황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예전에 가족과 함께 과천 경마장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마사회가 고문기업이라 초청을 받아 간 것인데, 경마에 직접 참여해 볼 수 있었다. 경마장에 가면 여러 업체들이 각자 ‘경마 예상지’를 판매한다. 경주에 참가하는 말들의 과거 성적, 최근 컨디션, 기수(騎手)의 건강상태, 기수와 말의 궁합 등을 고려하여 각 경주게임 별로 순위를 예상한다. 전문가들이 실제 관측과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참고 삼아 예상을 내놓는 것이어서, 예상지를 종합하면 실제 경주 결과는 거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누구나 1등을 예상하는 말에 배팅을 해봐야 결과를 맞춰도 별로 수익이 없다. 말 그대로 다크호스, 즉 누구도 1등을 예상하지 않은 경주마에 배팅을 하고, 그 말이 1등을 해야 큰 배당을 받게 된다.

당시 마사회 담당자가 이런 설명을 해줬다. “맑은 날에는 거의 예상지 예상대로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지요. 트랙이 미끄럽고 상황이 안 좋으므로 여러 변수의 작용이 커지거든요. 그래서 진짜 꾼들은 비 오는 날을 더 선호한답니다”.

‘코너링’에서,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말.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위기상황이 되면 기존의 문법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위기상황에 따른 순발력과 기민한 대처능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이미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1등보다 호시탐탐 전복(顚覆)을 노리던 2, 3등에게는 그 위기야말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2, 3등에게는 ’위기가 기회’가 아니라 ‘위기만이 기회’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월남전에서 베트남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미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 다른 포로들은 근거 없는 막연한 희망(‘크리스마스가 오면 구출되겠지’, ‘부활절이 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을 가졌던 것(소위 비합리적 낙관주의)과 달리, 그는 희망을 잃지는 않았지만 막연한 기대가 아닌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즉 ‘합리적 낙관주의’로 일관함으로써 오랜 포로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 이러한 스톡데일의 마음 자세를, 희망과 현실적 암울함을 모두 가슴에 가진다는 의미에서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고 한다.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삶의 제반 조건들이 위기라는 평가가 많다. 이런 무시무시한 평가는 우리를 위축시킨다.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이되 위기상황이야 말로 뒤처진 자들이 순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역설적 희망을 가지자는 격려를 모든 분들께 드리고 싶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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