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 기자

등록 : 2017.07.16 18:48
수정 : 2017.07.16 22:59

[뒤끝뉴스] 호찌민 교민사회가 쑥밭이 된 사연

정부 지원 불구 간섭 받지 않는 사각지대의 친목단체

등록 : 2017.07.16 18:48
수정 : 2017.07.16 22:59

지난달 말 청해부대 최영함이 10만 교민 도시 호찌민시에 정박하기 위해 사이공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선수 쪽의 평화로운 도시 풍경과 달리 한인사회는 내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청해부대 제공

오는 11월 같은 시기에 베트남 다낭과 호찌민에서 각각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를 넉 달 가량 앞두고 호찌민 교민사회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낭에서 회의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호찌민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은데, 대통령을 비롯해 호찌민을 찾는 각계 각층의 손님들을 맞이할 한인회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인회장은 한인회를 이끌며 교민들의 화합과 권익 향상에 힘쓰는 자원봉사자입니다. 민간외교관으로서 공관장과 자리를 나란히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방문 때는 1순위로 악수를 합니다. 이 밖에도 상공인 단체, 노인회 등 수 많은 한인 단체들을 대표하는 자리여서 해당 국가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물론, 각종 단체들이 최우선적으로 ‘컨택’ 하는 포인트가 바로 한인회장입니다. 그 만큼 다양한 이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자리에 사람이 없다? 그럴 리 만무합니다. 호찌민 한인회장 자리에 두 명의 회장이 있습니다. 김규 회장과 황의훈 회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김 회장은 선거를 통해 2016년 1월 13대 한인회장에 취임했고, 10대 한인회장을 지낸 황 회장은 같은 해 7월 ‘한인회 정상화 추진위원회’에 의해 새 회장으로 추대 받았습니다.

한 자리에 둘이 있다 보니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닙니다. 쌍방간에 폭언과 폭행은 말할 것도 없고 사기, 배임, 횡령, 무고, 업무방해, 명예훼손, 공무 집행 방해, 주거 침입ㆍ퇴거 불응죄 등등등. 열거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입니다. 이들 싸움에 교민들은 물론 재외 주민센터라고 할 수 있는 호찌민 총영사관도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생업에 바쁜 교민들이 등 돌린 지는 오래됐습니다.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오히려 되묻기도 하고 “이야기 하기 싫다”, “부끄럽다 꺼내지 말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풍요롭던 호찌민 한인회가 어떻게 하다 쑥대밭이 됐을까요. 직접적 사연은 지난해 2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날은 선거 이후 해체됐던 선거관리위원회가 다시 소집된 날입니다.

회의 안건은 김규 회장의 허위 학력 논란. 김 회장은 후보 유세 당시 선거 포스터에 최종학력을 ‘아메리칸 웨스턴대학교 대학원 박사’로 적고 ‘베트남 호찌민 인문사회대 교수’로 자신을 홍보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놓고 자꾸 잡음이 나오자 어떤 식으로든 교통정리를 하자며 소집된 자리였습니다.

선거 당시 김규 후보의 포스트. 호찌민 인사대 교수로 소개한 김 후보는 아메리칸웨스턴대학원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밝히고 있다.

회의에는 호찌민 인사대 총장 명의의 공문이 하나 제출됐습니다. 한글로 번역공증을 거쳐 베트남 외교부의 확인인까지 찍힌 문서였는데, “김규씨가 강의한 것은 맞지만 그에게 ‘명예교수’ 직명을 준 적 없다”는 게 요지입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재직증명서를 요청했더니 이렇게(명예교수) 나왔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또 김 회장에게 박사학위를 내 준 대학(아메리칸웨스턴대학교 대학원)과 관련, 선관위는 “존재하지 않는 기관으로 확인됐다”며 “학위가 사실이라면 학위증과 함께 논문집을 제출하라”고 요청했고, 김 회장은 26일까지 “소명 서류를 제출하겠다”고 답한 뒤 회의는 끝이 났습니다. 위원장과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선관위는 양측 인사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김규 회장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글. 김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광고잡지에 실렸다.

그런데 1주일 뒤인 25일, 선관위는 물론 교민 사회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김 회장의 소명 서류가 선관위에 제출되는 대신 교민 잡지 <굿모닝 베트남>에 ‘무엇을 원하시나요?’라는 글이 실리면서였습니다. ‘스페셜 리포트’ 코너에 한인회 명의로 실린 글은 “선거 당시 관련 서류를 완벽하게 제출했다”며 “한인회 정관과 규칙을 위반해 해산한 선관위가 다시 부활했다”, “불순한 세력이 한인 회장 흔들기를 하고 있다” 며 선관위를 때리고 나섰습니다. 이 글은 또 김 회장이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미국 대학의 부재 주장에 대해서는 “2014년 화재로 폐교됐지만 주정부 산하 교육관련 단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굿모닝 베트남은 김 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잡지사입니다.

결국 선관위는 이튿날 회의에서 1주일 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김 회장에게 ‘당선 무효’를 선언합니다. 취임식까지 치른 회장이 당선 취소되는 등 혼란을 일으킨 데에는 촘촘하게 선거를 관리하지 못한 선관위의 잘못이 크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호찌민 한인회 선관위의 '당선 취소' 결정에 불복하고 있는 김규 회장이 자신의 행동 근거로 든 선거관리규정의 한 조항. “선거 3일 후 해산한 선관위가 재소집 된 것은 불법이다.”

김 회장은 당연히 발끈했습니다. 한인회 선거관리규정에 따라 선거 3일 뒤 해체된 선관위가 다시 소집된 것 자체가 위법이고, 여기서 내놓은 ‘당선 무효’ 결정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관위 측은 입후보 당시 “취임 후에라도 허위 사실이 발견됐을 경우 당선 무효는 물론 후보자가 납부한 한인회 발전기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했다”며 이를 근거로 내린 결정인 만큼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김규 회장의 서약서. 선관위는 이를 근거로 김 회장의 당선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관위의 당선 취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의 활동이 계속되자 각 한인단체장들과 한인회 원로들은 한인회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꾸렸습니다. 7월 초 열린 한인회 총회에서는, 황의훈 회장이 만장일치로 새 회장으로 추대됐습니다. 10대 한인회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이렇게 머리가 둘이 되면 뒷일은 안 봐도 뻔합니다. 이때부터 어찌나 싸웠던지 한인회 내부의 갈등이 밖으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한인회 폐쇄’, ‘천막 한인회’, ‘공관의 한인회 탄압’, ‘최순실 촛불 집회 금지’ 등 간간이 들리던 잡음들이 모두 이 일이 생긴 후 나온 것들입니다. 모두 물리고 물려 있는 사건들입니다.

양 측은 가장 먼저 한인회 상징과도 같은 홈페이지의 운영권과 총영사관 별관에 있던 한인회 사무실 점유를 놓고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이 고용한 베트남 현지 용역들이 들이닥치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총영사관 별관은 외교 공관으로서 치외법권지역입니다. 경찰 영사가 엄연히 주재하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 영토에서 한국 공권력이 농락당한 셈입니다. 출입문이 깨져 나가고 PC 등 사무실 집기들이 바닥에 나뒹구는가 하면 한인회 사무실은 그걸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으로 난장판이 됐습니다. 황 회장은 “이러다 누가 하나 죽어나가야 일이 끝날 것 같았다”며 한인회 사무실 폐쇄 조치를 공관에 요청했고, 총영사관은 더 큰 불상사 방지를 위해 국유재산 무상사용허가를 취소했습니다. 김 회장이 총영사관 별관 마당에 ‘천막 한인회 사무소’를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한인회 처지가 이럴진대, 한인회가 탄압받는다는 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내부 싸움을 위한 동력을 외부에서 끌어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총영사관 별관 내 마련된 한인회 사무실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면서 집기들을 부수고 있다.

이후 큰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교민사회의 시선은 냉랭합니다. 도대체 한인회가 뭐 하는 곳이며, 누구를 위한 곳이냐는 겁니다. 이런 비판 때문인지 지난 4월에는 두 회장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협력해 교민사회 화합과 발전을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냈습니다. ‘이제는 뭐가 좀 되려나 보다’하는 기대감이 비치기도 했고,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대목을 맞아 여러 관련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며칠 못 가 김 회장은 계속해서 ‘회장’ 명함을 돌렸고, 지난 달에는 미얀마에서 열린 아시아 한인회장대회에까지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 역시 ‘쇼’ 였음을 확인한 교민들은 깊은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다. 한 원로는 “도대체 우리 한인들의 수준을 어떻게 보고 이렇게 장난을 치는지, 이런 일 하나에 우리가 손도 못 쓰고 있을 정도로 무기력한가”라며 한숨만 쉬었습니다. 지금 같은 분위기로는 문 대통령이 호찌민을 찾는다 하더라도 호찌민 한인회와는 인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5월 26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내놓은 재결문

김 회장은 지난 5월 26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판결(재결) 하나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11월 호찌민 총영사관이 한인회를 상대로 국유재산(한인회관) 무상사용을 금지한 조치가 부당하다고 이를 취소해 달라며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청구서를 제출했는데, 그에 대한 답이 6개월 만에 온 겁니다. “김규는 적법한 한인회 대표자로 보기 어렵다”며 그가 낸 행정심판청구를 각하한다는 내용입니다. 심판위는 또 호찌민 한인회 선관위는 김 회장의 당선 무효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학력 문제가 취임식까지 치러진 뒤에서야 불거진 대목에서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1월 3일 역대급 규모로 치러진 김 회장의 취임식 행사에서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당초 ‘이ㆍ취임식’으로 열릴 예정이었지만, 사실상 취임식으로만 행사가 진행됐고 ‘아름다운 이임’을 기대했던 전임 회장단이 약속과 달리 찬밥 취급을 당하자 들고 일어났다는 겁니다. 선거에서 전임 회장단이 김 회장을 측면 지원했기에 그날 행사는 배신감을 배가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인회 자체가 친목단체이기 때문에 이들의 이런 시시콜콜한 내부 싸움에 언론도, 정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또 무슨 사건이 생겨도 멀어서 신경을 쓰려야 쓸 수도 없습니다. 또 이들의 분쟁에 베트남 당국이 간여할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인회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간을 무료로 이용하고, 그 대표성 덕에 정부와 기업들의 각종 지원을 받지만 그 어디로부터 간섭 받지 않는 사각지대의 단체이기도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서 발붙이고 사는 교민들이 한인회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 이유입니다.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호찌민시를 찾는다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제대로 된 한인 대표와 악수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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