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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외교

입력
2017.06.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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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을 놓고 헌법재판소 판결에 모든 관심이 쏟아지던 3월 초, 작은 뉴스 하나가 보도되었다. 한국 청해부대가 EU의 해적퇴치 작전인 ‘아탈란타(Atalanta)’에 참여했다는 내용이었다. 2011년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수행한 소말리아 지역에서의 활동이다. 한국이 위기관리협정을 통해 EU 공동안보방위정책에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첫 아시아 국가라는 설명도 짧게 덧붙여졌다.

한국과 EU 간의 ‘위기관리활동 기본참여협정’은 2014년 5월 체결된 이래 2년 반이라는 시간을 국회에서 표류했다. 석연찮은 정략과 무관심 사이에서 이리저리 차이는 동안 외교의 골든 타임은 계속 지나갔다. 그 와중에 자위대 해외파병이 가능해진 일본은 아덴만, 발칸반도, 사헬 지역에서 유럽 공동안보 활동에의 기여도를 높여왔다. 이러다가 훨씬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자위대 깃발 아래서 한국이 조연으로 참여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위안부 문제를 소리 높여 외치던 정치권이 과연 이런 문제도 진지하게 생각했을까.

EU는 처음으로 정권 초에 파견한 대통령 특사 방문에 고무되었고, 한국이 FTA와 기본협정, 그리고 위기관리협정을 모두 체결한 특별한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작년 말에 가까스로 통과된 이 작은 협정은 앞으로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EU와의 공조에 촉매가 될 것이다. 외교의 돌파구는 이러한 작은 접점에서 나온다.

기존 4강 외교의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는 여러 번 거론되었다. 실제로 한국 외교의 압도적 자산은 북한 문제와 4강 외교에 투입된다. 4강 외교는 단순히 주변 네 나라를 상대한다는 산술적 개념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대한, 각기 상대하기도 버거운 국가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지정학적 상황은 아마도 한국 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한미동맹이라는 축을 단단히 잡지 않는다면 안정된 생존 자체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모든 길은 워싱턴으로 통한다”에 누가 감히 토를 달 것인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외교 현안의 처리는 청와대나 본부에서 선호할 몇몇 키워드 중심으로 잘려나갔고, 정보의 편식은 외교적 사고의 유연성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불렀다.

이제 그런 외교의 패러다임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한미관계와 4강 외교에 대한 강조도 중요하지만, 외교라는 게임의 성격 자체를 잘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한국의 제한된 자원으로 4강 외교와 글로벌 외교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서로 연계되도록 여러 접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과제다. 작은 나라는 그 접점을 지렛대로 삼아 더 큰 상대방을 움직여야 한다. 그 접점은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작은 감동을 주는 외교 행위에서 나올 수도 있다.

거대 외교 담론의 그늘에 수많은 글로벌 외교의 접점들이 놓여있다. 그 의제들은 소리 없이 진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햇볕도 쬐지 못하고 시들기도 한다. 해 봤자 별 소용 없는 일에 시간을 쏟느니, 기존 강대국과 네트워크 잘 관리하면서 조율과 공조를 강화한다는 것은 외교문제를 다뤄본 실무진들에게는 모범답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충격이 없다면 여전히 4강 외교는 외부환경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고,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외침은 진부해진다. 북핵 비확산의 당위성만 가지고는 국제사회를 움직일 수 없다. 우리가 기여한 만큼만 받아올 수 있고, 우리가 감동시킨 만큼만 움직일 수 있다.

지역 외교에서, 기능 외교에서 놓치고 있는 의제들이 너무 많다. 냉장고 속에서 묵히고 있는 재료들을 꺼내서 15분만에 뚝딱 멋진 음식을 만들어 낼 쉐프가 필요하다. 거기에 유용한 외교 접점이 있다고 국민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순발력과 창의력 없이 한국 외교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모범답안을 새로 쓸 때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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