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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같은 말라리아…" 머리 아픈 주제들이 머리에 쏙쏙

입력
2015.07.1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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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다 1, 2 이명현 김상욱 강양구 지음/사이언스북스 발행/각권 1만6,500원
과학수다 1, 2 이명현 김상욱 강양구 지음/사이언스북스 발행/각권 1만6,500원

‘과학 수다’라니? 두 단어의 조합이 어색했다. "사랑이란 모든 감정 중 가장 수다스러우며 그 대부분이 수다로 이루어져있다"는 로버트 무질의 소설 ‘특성없는 남자’의 한 구절을 떠올렸더니, 과학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수다로 풀어낸 책이 아닐까 추측됐다.

300쪽이 채 안 되는 두 권의 책은 각각 8개, 7개의 과학 관련 대화 주제를 가진 옴니버스 형식의 과학 입문서다. 1권은 암흑에너지, 근지구 천체, 뇌과학, 양자역학, 줄기세포, 힉스입자,핵 에너지, 3D 프린팅을 다뤘고 2권에서는 SF, 기생충, 빅 데이터, 중성미자, 세포, 투명 망토, 핵융합을 다뤘다. 이 수다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이명현 박사가 쓴 에필로그에 그 답이 있다. 2011년 9월 24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가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보도에 대한 과학자들의 대담이 수다의 시작이며 이 책의 기원이다. 도대체 빛의 속도보다 빠른 입자가 발견되었다는 게 무슨 큰 일이고 수다거리가 된다는 말인가?

"빛의 속도는 어떤 상황에서나 '상수'로 고정되어 있고 (중략) 상대성 이론의 세계에서는 빛의 속도를 일정한 값으로 유지하기 위해 시간 지연, 거리 단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절대 상수인 빛보다 빠른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지요."(이강영 교수) 수다를 촉발시켰던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발견은 속도 측정에 오류가 있었다. 가끔 발생하는 씁쓸한 과학계의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수다는 결코 씁쓸하지 않다. "2011년 9월에 초신성 폭발이 있었잖아요. 물론 실제 폭발은 약 2,000만년 전에 있었겠지만요. 만약에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면, 그 초신성으로부터 날아온 중성미자가 최소한 4~5년 전에 검출이 되었어야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거든요." 이명현 박사의 '수다' 한방은 극미의 세계를 다루는 입자물리학과 거대한 우주를 다루는 천체물리학이 어떻게 결합되는지 깨닫는 길을 터준다.

이 책은 무시무시하게 어려울 것만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쉽게 읽히고, 쏙쏙 들어온다. 문어체의 복잡한 논리전개를 피하고 모르는 학생에게 설명하듯 쉽게 풀어주기 때문이다. 과학자나 기자가 독자를 대신해 좋은 질문을 던지므로 사안의 핵심을 놓치는 법도 없다. 과학자들의 수다라고 해서 딱딱하고 썰렁할 거라는 예단은 금물. 깨알같은 재미도 가득하다. 골지체가 뼈 골, 기름 지인줄 알았다는 얘기(골지는 발견자 이름)서부터, 말라리아는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사이코패스처럼 행동한다는 대목들은 입가에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과학상식은 물론, 한 두마디의 수다에 묻어나는 통찰이 이 책을 통해 얻게 되는 큰 수확이다.

수다와 수다 사이 해설은 진지함과 차분함으로 지식을 더한다. 줄기세포와 인간배아에 대한 연구윤리를 다루면서 과학의 특수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과학 또한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며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는 활동이라는 어찌 보면 자명한 인식부터 필요하다”는 지적이나 "과학의 목적은 복잡한 사실로부터 가장 단순한 설명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탐구하는 목적이 단순함이기에 사실 자체가 단순 하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인용문은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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