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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붉은악마’ 치우는 한국인의 조상일까

입력
2017.10.27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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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의 상징. '귀면와'에서 따왔으며 이는 치우를 형상화한 것이라 알려져 있다. 김인희는 귀면와란 실은 중국 북위에서 시작돼 당나라 때 유행한 양식이 한국에 전래된 것일 뿐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붉은 악마의 상징. '귀면와'에서 따왔으며 이는 치우를 형상화한 것이라 알려져 있다. 김인희는 귀면와란 실은 중국 북위에서 시작돼 당나라 때 유행한 양식이 한국에 전래된 것일 뿐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지난 한 주 화제였던 ‘우리 개는 안 물어요’를 패러디하자면 “우리 민족주의는 안 물어요”다. 가령 중국의 동북공정에는 단어 하나 토씨 하나까지 문제삼으면서, 정작 그 동북공정이 ‘위대한 상고사’, ‘고토(故土)’, ‘다물(多勿)’을 소리 높여 외치는 바람에 증폭되고 극단화됐다는 부분에 대해선 모르쇠다. 왜? 너희는 침략 야욕이요, 우리는 역사적 정의니까. 우리 개는, 우리 민족주의는 안 무니까.

푸른역사에서 내놓은 ‘치우, 오래된 역사병’은 ‘2002 월드컵 오 필승 코리아’의 그 치우를 건드린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인류학자인 김인희는 문헌 연구뿐 아니라, 중국 현지답사 경험, 박사학위 논문 쓸 때 자신도 범할 법했던 실수에 대한 고백 등을 함께 녹여 뒀는데, 뼈대만 추리자면 이렇다.

치우(蚩尤)란 뱀이 많은 중국 남쪽 장강(長江) 일대 지배 세력을 상징한다. 갑골문을 보면 치(蚩)란 뱀을 밟은 불길함을, 우(尤)는 고기를 독점하는 탐욕을 상징한다. 황제로 대표되는 황하 세력이 보기에 장강에 사는 놈들이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는 의미다. 거기다 장강 일대는 구리가 풍부해 청동기가 빼어났다. “구리로 된 이마”를 지닌 치우가 기주, 혹은 탁록에서 황제와 한판 승부를 벌였다는 얘기도 거기서 나온다.

1990년대 중국이 시조로 내세우려 했던 이는 원래 황제와 염제였다. 불길하고 탐욕스러운 반역자 치우의 자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치우를 넣어 ‘중화삼조(中華三祖)’라 한 건 중국 남부 묘(苗)족 때문이다. 묘족이 문헌에 등장하는 건 송나라 때다. ‘위대한 민족사’를 만들려면 일단 역사를 엿가락처럼 질질 늘려야 한다. 묘족은 고대 문헌의 치우를 끌어들였다. 묘족의 ‘치우공정’인 셈인데, 왜 황제와 염제만 기리느냐고 반발하는 묘족을 달래기 위해 중국은 중화삼조 개념으로 이를 수용했다. 중국에게 중화삼조란 동북공정보다 서남공정에 가깝다.

남방계인 치우는 어쩌다 동이(東夷)가 됐을까. 동이설은 1930년대 산둥성 룽산(龍山)문화 발굴 이후 툭 튀어나왔다. 논거가 부실한데다 추가 발굴이 이뤄지면서 학계에선 배척됐다. 유야무야된 주장인데 한국엔 열렬 지지자들이 넘쳐 난다. 중국 입장에선 한국인들이 알아서들 치우 후손이라 하니 이렇게 대꾸하면 된다. “그럼 너희도 중화민족 후손이네!” 한국인은 ‘치우 동이설’이 동북공정을 깨부술 무기라 믿지만, 실은 한국을 통째로 중국에 들어다 바치는 함정에 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일 수도 있다. 책엔 저자의 실제 체험담도 있다.

여러 주장을 비교, 검토하는 책이니 손쉽게 쭉쭉 읽힌다 말하긴 어렵지만 중국, 묘족, 한국이 각각 제 편한 대로 치우를 가져다 쓰는 모양새가 큭큭 웃음 터지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이런 양상을 제 마음대로 쓰는 역사, ‘심사(心史)’라 해뒀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나 역사를 바로 써야 한다는 둥 목청 높이는 이들이 많은 건, 헛헛한 심사(心事)를 달래는 데 심사(心史)만한 게 없어서긴 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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