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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 사회는 얼마나 관대한가

입력
2015.08.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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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필자가 탄 비행기가 내린 새벽 5시 무렵에는 동남아 지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가 많이 있다. 관광 일정을 마치고 밤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많아서이다. 그 비행기의 승객 중에는 관광을 마치고 즐겁게 돌아오는 관광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항의 복도 여기 저기에는 똑같은 모자에 똑같은 외투를 입은 10여명의 외국인들이 그룹을 지어 모여 있었다. 누가 봐도 관광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아니다.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입국한 그들은 자국에서 일하는 것 보다 힘들어도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것이 조금은 더 소득을 버는 데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온 사람들이다.

거기에 있는 그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하다. 짧은 순간 스쳤지만 단지 잠이 덜 깬 표정은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이제 정말 시작한다는 두려움과 떨림이 그들의 얼굴에 묻어 나왔다. 월남전으로 향했던 필자의 부모, 가족을 위해 중동 건설 현장으로 향하던 필자의 삼촌들이 외국의 공항에서 느꼈을 감정이 떠올라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게 되었다.

짐을 찾고 세금 신고서를 내는 지점을 통과할 때였다. 초가을이었지만, 철 이른 외투를 입은 동남아 지역의 청년이 필자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청년은 아까 보았던 다른 무리의 외국인들처럼 목에 큰 인식표를 차고 있었다. 그가 본인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우리나라에서 고되겠지만 적어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생각이 필자의 머리 속을 스칠 무렵, 우리 공항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왜 그렇게 했어? 똑바로 안 해?” 아마 산업연수생들은 그 인식표 안에 무언가의 서류를 넣어서 우리 공항 직원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해야 했던 것 같다. 공항 직원의 호통에 외국인 청년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서류를 꺼내어 보여주고 출구를 향했다.

이미 많은 힘든 과정을 거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가 한국 땅에서 처음 몸으로 느낀 한국은 반말로 고함을 친 공항 직원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한국어 교육으로, 그리고 그 공항 직원의 말투와 표정에서 그가 자신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있는지 알 터였다.

필자가 근무하는 워싱턴 지역은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교관, 주재원, 특파원, 유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덜 한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기분이 몹시 나쁘다가도 근무 도중 만나는 동포들을 볼 때면 미국의 개방에 대한 인식과 이민자들에 대한 관대함을 느낄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에서 한국과 관련이 있는 부서에 근무하는 많은 젊은 청년들은 부모는 한국인이지만, 본인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가 많다. 과거에 비해 한국 관련 부서를 비롯하여 의회 보좌관 등 정부에 진출한 한인들의 수가 많이 증가했다. 이렇게 활약이 많아지는 한인들을 보면서 다시 공항에서 우연히 본 산업연수생 청년이 떠올랐다.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의 10% 이상은 이미 외국인과의 혼인이다. 도시 이외의 지역에서는 국제 결혼의 빈도가 더 높아진다. 이미 우리 사회는 많은 이민자들이 사회 구성의 주요 부분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을 우리와 같은 국민으로 대하는지,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한 시혜의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우리와 같은 국민으로 동화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지난 2007년 동포 청년의 총기 난사로 많은 미국인이 사망했을 때, 우리 대사관에서 사과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였다. 그때 미국측의 대답은 왜 미국인의 잘못을 한국이 사과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만약, 우리나라에 사는 이민자가 같은 행위를 했을 경우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우정엽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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