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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연기 무대 삼박자 고루 갖춘 연출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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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연기 무대 삼박자 고루 갖춘 연출의 승리

입력
2016.10.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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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릴리스 & 덴마크 리퍼블리크 씨어터 음악극 ‘햄릿’. LG아트센터 제공
타이거 릴리스 & 덴마크 리퍼블리크 씨어터 음악극 ‘햄릿’. LG아트센터 제공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무대 한 가운데에 선 햄릿이 전 세계 연극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를 선언하자 섬뜩한 캬바레 연주가 울려 퍼진다. 밴드 타이거 릴리스의 보컬 마틴 자크가 특유의 팔세토 창법(가성)으로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미쳐버린 오필리어가 몸에 와이어를 달고 공중으로 뜨자 가설 벽에 영상이 투사되며 무대 전체가 깊은 연못으로 변한다. 피아노와 수자폰, 전자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이 어울린 연주가 처연함을 더한다.

12일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한 음악극 ‘햄릿’은 올해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국내에서 선보인 10여개의 ‘햄릿’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의 컬처 밴드와 햄릿의 배경인 덴마크 극단이 합작해 공연 전부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햄릿 제작을 결정하자마자 타이거 릴리스가 떠올랐다”는 연출가 마틴 툴리니우스의 소개처럼 작품은 음악극, 더 정확하게 마틴 자크의 노래에 적합한 방식으로 재구성됐다. 장대한 원작은 21개 장면으로 압축됐고 각 장면은 타이거 릴리스의 연주와 노래가 이끌어 간다. 마틴 자크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19곡을 만들고 가사도 직접 썼다. 광대 분장을 한 채 아코디언을 들고 등장한 그는 작품을 이끄는 해설자이자 연주자, 가수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배우들의 연기와 고난도 마임, 때때로 출몰하는 영화 패러디 장면(예컨대 왕비 거투르드와 햄릿이 다투는 장면은 라 스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에서 커스틴 던스트가 웨딩드레스 입고 뛰는 장면과 놀랍도록 닮았다)은 그의 노래를 형상으로 현현한다. 희곡은 노래가 되고 노래는 이미지가 된다.

타이거 릴리스&덴마크 리퍼블리크 씨어터 음악극 ‘햄릿’. LG아트센터 제공
타이거 릴리스&덴마크 리퍼블리크 씨어터 음악극 ‘햄릿’. LG아트센터 제공

노래, 연기, 무대 삼박자가 영리하게 맞아떨어지는 연출은 장면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광대로 분장한 인물들이 창문처럼 구멍 낸 세트 벽에 머리를 디밀고 원작의 대표 어록을 내뱉는다. 위태롭게 기운 식탁에 둘러앉아 희희낙락하는 왕족들은 이내 인형처럼 줄에 매달린다. 세트 벽은 기울기를 바꿔가며 오필리어가 뛰어드는 연못이 됐다가, 죽은 그녀가 묻히는 무덤이 됐다가 햄릿과 레어티스가 결투하는 무대가 된다.

영상과 피지컬 무브먼트 같은 다원예술을 차용해 최첨단의 미학을 구현한 작품은 한편으로 공연에서 장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연극의 원형은 바로 이런 ‘구분 없는’ 놀이 마당 아니었을까. 공연은 14일까지. (02)2005-0114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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