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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반려인 자격 제한’ 이전에 생각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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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반려인 자격 제한’ 이전에 생각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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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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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기르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 모두 사회에 잠재적인 위험이 따르고 필수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픽사베이
개를 기르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 모두 사회에 잠재적인 위험이 따르고 필수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픽사베이

지난해 유명 연예인의 개에게 물린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하면서 사람을 죽인 개는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든가, 맹견은 입마개를 하고 다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든가, 더 나아가 반려견을 아무나 기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나는 지난번 칼럼에서 안락사 주장이 의미가 없음을 말했다. (▲지난 칼럼 읽기)

그 후 마침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의 자격 제한을 해야 한다는 김슬기 변호사의 칼럼이 동물공감에 실렸다. 반려견을 입양할 때 입양되는 개의 마릿수를 제한해야 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만이 입양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사람의 경우에도 입양을 할 때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지’ 심사를 한다는 예를 든다.(▲관련 칼럼 읽기)

철학자 중에는 입양이 아니라 아예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아이를 낳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는 이들이 있다. 부모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심사하여 이른바 ‘부모 자격증’을 받은 사람만이 아이를 낳게 하자는 것이다. 

부모 자격증 제도를 두자는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나 변호사 따위의 자격증 제도를 운용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격증 제도를 두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업종은 그 소비자들에게 잠재적인 해로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돌팔이 의사에게 치료를 받다가 생명이나 건강의 위협을 받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일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일체의 자격증 제도에 반대하고 어떤 의사나 변호사를 찾아갈지는 자유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자유 시장에서는 돌팔이보다는 실력이 있는 의사나 변호사에게 자연스럽게 손님이 몰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업종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자유롭게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의 문제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을 시험을 통해 골라내서 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잠재적인 해로움을 줄 수 있는 직종의 경우 보통 자격증을 필요로 한다. 언스플래시
소비자들에게 잠재적인 해로움을 줄 수 있는 직종의 경우 보통 자격증을 필요로 한다. 언스플래시

부모가 된다는 것도 의사나 변호사가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가 적용된다. 의사나 변호사가 소비자에게 잠재적인 해로움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부모는 그만큼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아이를 학대하거나 심지어는 죽게 만드는 사례를 너무나도 자주 접한다. 아이들과 함께 자살하는 뉴스를 접하면 저럴 거면 무책임하게 아이를 왜 낳았느냐는 탄식을 한다. 꼭 그렇게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보면 아이를 방임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주지 않는 사례는 흔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자격증의 잠재적인 영향력은 의사나 변호사의 자격증보다 운전면허가 훨씬 크다. 아무에게나 운전면허를 주면 안 된다는 여론이 있고 실제로 운전면허 시험을 어렵게 하는 것처럼, 아무나 부모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지식과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부모가 되기 위해서도 역시 많은 지식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양육에 필요한 지식뿐만 아니라 배려심, 희생정신, 현명한 판단력 따위의 성향도 필요로 한다. 아이 한 명을 기르기 위해서는 한마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낳는다.

부모가 되는 것만큼 다른 존재에게 큰 해로움을 주는 ‘직종’은 없는 것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부모가 되는 것만큼 다른 존재에게 큰 해로움을 주는 ‘직종’은 없는 것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부모 자격증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과연 반려견을 기르는 자격과 아이를 기르는 자격 중 어느 쪽이 더 필요한지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다시 정리하면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잠재적인 위험과 필수적인 지식 또는 능력 때문이었다.  더 힘든 아이를 기르는 자격증도 없는 마당에 무슨 개를 기르는 자격증을 주자는 주장을 하느냐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개를 기르는 자격증이 필요로 한다는 주장이 나온 김에 아이를 기르는 자격증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개를 기를 때 개를 학대한다거나 그 개가 주변 사람을 위협한다거나 짖거나 지저분한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친다거나 하는 잠재적인 위험 때문에 반려견에 대한 불만이 많다. 

방금 말한 위험의 ‘개’ 자리에 그대로 ‘사람’을 대입해 보라.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그런데 왜 유독 개를 기를 수 있는 자격증만 말한단 말인가? 그러니 부모 될 자격조차 요구하지 않는 지금, 반려인 자격증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훈 강원대 교수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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