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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의 영혼이라는 반도네온의 음색에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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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의 영혼이라는 반도네온의 음색에 빠져보세요”

입력
2018.02.21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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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출신 연주자 고상지씨

대학 중퇴 후 본격 음악의 길

日ㆍ아르헨티나 오가며 공부

정재형ㆍ김동률 등 음반작업 참여

26일 공연서 자작곡 등 들려줘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과 록 음악, 탱고에 푹 빠졌던 고상지는 요즘 바로크 음악에 꽂혀있다. 고씨는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드래곤 퀘스트’ ‘나디아’ ‘애반게리온’ OST에 바로크 음악 요소가 많다. 3월에는 반도네온으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과 록 음악, 탱고에 푹 빠졌던 고상지는 요즘 바로크 음악에 꽂혀있다. 고씨는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드래곤 퀘스트’ ‘나디아’ ‘애반게리온’ OST에 바로크 음악 요소가 많다. 3월에는 반도네온으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연통 같은 주름상자 양쪽에 수십 개 단추가 달렸다. 단추를 누르며 연통을 늘리고 줄이면 처연하면서 고혹적인 음이 뿜어져 나온다. 아코디언의 사촌쯤 돼 보이는 악기 이름은 반도네온. ‘탱고의 영혼’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국민 악기지만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설다. “독일에서 종교 음악에 쓰려고 만든 건데 아르헨티나로 건너오면서 탱고 음악에 쓰인 거예요. 2차 세계대전 때 반도네온 공장 노동자들이 강제 징집되면서 재료가 바뀌었고 그래서 2차 대전 이전, 이후에 만든 악기 음색이 달라요.”

1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만난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35)는 익숙한 듯 설명을 이어 간다. 정재형, 김동률, 윤상, 이적 등의 공연과 앨범에 참여하며 음악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반도네온에 관한 일반의 호기심은 고씨가 이 악기를 처음 손에 쥔 2001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당시를 “악기계의 블루오션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상지가 국내 손꼽히는 반도네온 연주자가 된 건 부사 ‘마침’이 열 번쯤 나오는 사연을 거쳐서다. 대전과학고, 카이스트에 입학하며 ‘엄친딸’의 길을 착실히 밟던 그는 대학 입학 후 하드록 밴드 동아리에 가입했고, 베이스 기타를 치며 음악에 빠졌다. 뒤늦게 배운 기타와 피아노 실력으로 교내 가요제에서 줄줄이 떨어지고 난 후 눈에 들어온 게 반도네온. 마침 고씨의 이모는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즈음 ‘탱고의 나라’를 찾았다. 2차 대전 이전에 출시된 ‘앤티크 반도네온’은 현지에서도 연주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거래돼 이모는 반도네온 구매에 실패. 가야금을 전공했던 어머니는 탱고 쇼를 보러 갔다 마침 한 할아버지 연주자의 “아들 주려고 쟁여 둔” 앤티크 반도네온을 알아보고 사 왔다. 마침 고씨의 하드록 밴드는 “맘에 드는 노래를 들으면 악보 찾지 말고 귀로 따 악보를 그리라”고 하던 스파르타식 동아리였고, 고씨는 베이스 기타를 혼자 익힐 때처럼 어떤 고민도 상처도 없이 홀로 반도네온을 공부했다. 마침 고씨의 어학 강의를 맡은 외국인 교수가 재즈 색소폰을 연주했고, 두 사람은 영화 ‘여인의 향기’의 OST 한 곡을 달달 외워 길거리 공연에 나섰다. “첫날 2시간 연주하고 2만원을 벌었어요. ‘이걸 하면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반도네온을 중점적으로 파기 시작했어요.”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씨가 19일 서울 서대문구 의 한 카페에서 악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씨가 19일 서울 서대문구 의 한 카페에서 악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아직 ‘마침’의 활약이 남았다. 대학을 그만두고 음악으로 먹고 살기로 한 고상지는 길거리 공연을 이어 갔고, 마침 고상지의 공연을 접한 한 일본인이 일본 출신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 고마쓰 료타(小松亮太)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고상지는 2006년부터 3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고마쓰 료타를 사사하고 2009년부터 2년간 아르헨티나에서 공부했다. 반도네온의 특성(2차 대전 전후로 음색이 다르다, 반도네온 거래 시 가격과 품질이 정비례하지 않는다 등등)을 설명하던 고씨는 “(료타) 선생님이 ‘어디서 이런 너덜너덜한 악기로 연주하냐’면서 본인 쓰던 것 중 하나를 팔아 지금까지 메인 악기로 쓴다”며 멋쩍게 웃었다. 가야금 전공의 어머니가 샀던 반도네온은 한국인 조율사 손을 거쳐 공연 시 고장 날 때 무대에 세우는 ‘세컨드 악기’가 됐다.

무대에서 종종 아코디언을 연주했던 가수 하림이 반도네온에 푹 빠진 그를 눈여겨보았고 마침 반도네온 연주자를 구하던 정재형에게 소개, 정씨가 참여한 2011년 MBC 무한도전 가요제 참가곡 ‘순정마초’를 통해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2014년부터 출시한 석 장의 앨범에는 작곡, 편곡 등 음악가적 역량을 담뿍 담았다.

26일 잠실 롯데콘서트홀 ‘올 댓 뮤직’ 공연에서 그간의 내공을 펼쳐 보인다. 바이올리니스트 윤종수, 피아니스트 최문석, 비브라폰(금속막대를 두드려 소리를 내며 실로폰과 비슷한 타악기) 연주자 마더바이브와 함께하는 공연은 피아졸라의 ‘리베로 탱고’ 등 귀에 익숙한 탱고 음악과 고상지의 자작곡 중 대표작을 들려줄 예정이다. “눈만 봐도 척하고 호흡이 맞는, 평생 함께 할 친구들”과 하는 이번 무대는 비브라폰에 방점을 줄 계획이라고. “비브라폰을 탱고 연주에 쓰면 화려하고 현란한 멋을 내거든요. 나른한 오후 2시에 듣는 열정적인 탱고 음악. 색다른 경험이겠죠.”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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