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문선 기자

등록 : 2017.03.08 04:40
수정 : 2017.07.05 09:34

[최문선의 욜로 라이프] "스몰 럭셔리" 호텔이 집으로 들어온다

호텔처럼 집 꾸미기... '불황형 가치 소비' '휴식의 소비상품화'

등록 : 2017.03.08 04:40
수정 : 2017.07.05 09:34

매일 호텔에서 자고 싶다면? 집을 호텔처럼 꾸며 보자. 미니멀한 가구에 포인트 가구를 믹스매치하는 게 호텔식 인테리어의 핵심이다. 이노메싸 제품

호텔(Hotel)의 어원은 라틴어 ‘Hospitale’. 병원(Hospital)과 뿌리가 같다.

집 떠나 고생하는 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탈출한 이를 치유하는 곳이 호텔이니까.

사각거리는 이불 속에서 눈뜨는 아침, 샤워 가운의 보드라운 감촉, 상쾌하고도 그윽한 향기. 누구나 호텔에 품은 로망일 터. 자주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은 로망의 안타까운 속성이다. 내 집인 양 호텔에서 자주 묵을 수 있다면… 아예 집을 로망의 공간으로 바꾸면 어떨까.

집 안의 호텔, 나는 “호텔 스타일”

비싸지만 쉬운 방법은 호텔 물건을 사서 쓰는 것이다. 호텔 물건은 몇 년 전까지 기념품이었다. 집어온 샴푸, 빗, 볼펜 같은 호텔 어메니티(amenitiesㆍ편의용품)를 늘어 놓고 즐거운 그날의 추억을 소환했다. 이제는 호텔 물건을 구입한다. 호텔에서 누린 경험을 집으로, 일상으로 연장하고 싶어서다.

호텔 용품 시장이 무섭게 커지고 있다. 특급 호텔들은 다양한 PB상품(Private Brand Goods)을 만들어 판다. 편의점과 대형 마트의 PB상품이 저렴한 가격을 앞세웠다면, 호텔 PB상품은 ‘호텔이 약속하는 품질’을 강조한다. 호텔 이름이 곧 명품 브랜드다.

호텔의 꽃은 역시 침구. 호텔 객실에서 쓰는 새하얀 침구를 매일 밤 내 침대에서 쓸 수 있다. 웨스틴조선 호텔은 ‘헤븐리 침구’를, 롯데호텔은 ‘해온’을, JW메리어트 호텔은 ‘리바이브 베드’를 내놨다. 자면서 흘리는 누런 땀이나 수없이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어째야 할까 싶지만, 잘 팔린다고 한다. 이불, 침대 패드, 베개까지 포함한 풀세트는 100만~200만원대. 신혼부부들이 주로 산다. ‘헤븐리 침구’를 침대 매트리스까지 풀세트(500만~800만원)로 사면 호텔 직원이 방문해 침대를 ‘호텔처럼’ 정리해 준다.

웨스틴조선 호텔의 헤븐리 침구 세트. ‘천상의(Heavenly) 수면’을 약속한다는 뜻이다.

수건이 ‘○○세탁소 신장개업’‘ ◇◇◇회사 체육대회’ 따위를 수놓은 기념품이던 시절은 저물었다. 양탄자처럼 폭신하고 얼굴, 손, 몸 등 닦는 곳에 따라 크기도 다른 호텔 수건이 대세다. 샤워 가운도 호텔들의 효자 상품이다. 샤워 가운이 영화 러브신에 단골로 등장하는 ‘로맨틱의 상징’에서 매일 입고 벗는 일상 용품이 된 것이다.

호텔엔 저마다 시그니처 향기가 있다. 호텔 내 모든 곳에서 단 한 가지 향이 나야 한다는 것이 호텔의 법칙. 호텔 더 플라자는 그 향기를 판다. 유칼리투스향 디퓨저는 지난해 출시한 지 1년 만에 1,200여개 팔렸다. 거실에서 유칼리투스향을 맡으며 호텔 로비를 떠올리는 것일까. 더 플라자는 호텔 일식당에서 쓰는 젓가락도 판다. 일본 장인이 자작나무를 깎아 만든 젓가락이 두 벌에 5만원. 포시즌스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쓰는 접시 세트(6개 48만원)를, 임피리얼 팰리스는 로비 카페에서 사용하는 찻잔 세트(20만원)을 PB상품으로 내놨다.

지갑 사정이 빡빡한 이들에겐 호텔식 물건이 있다. 침구, 수건, 커튼, 실내화, 샴푸통… 호텔 상품이 아니어도 호텔 풍으로 만들어 ‘호텔식’을 붙이면 잘 팔린다고 한다. 호텔식은 ‘스몰 럭셔리’의 동의어.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올 1,2월 호텔식 상품 판매량은 이불(900%) 수건(568%) 욕실 용품(850%) 등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폭증했다. 허정대 서울 웨스틴조선 RSP 파트장은 “호텔 숙박 경험을 계속 소비하고 가족과도 나누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라며 “호텔식 생활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물건으로 성이 차지 않는 이들은 집을 통째로 호텔처럼 꾸민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호텔식 인테리어다. 가구 브랜드 ‘이노메싸’ 관계자는 “부티크 호텔들처럼 미니멀한 가구들을 주로 배치하고 1950~1960년대 북유럽 빈티지 클래식 가구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최근 트렌드”라고 말했다.

더 플라자의 PB상품 P컬렉션. 샤워 가운과 자작나무 젓가락, 유칼리투스 향 디퓨저.

허세? 웰빙? 휴식의 소비상품화

우리는 왜 호텔을 동경하는 것일까. 경제 불황과 가계 소득 정체가 높이 쌓은 소비 절벽이 왜 ‘호텔 스타일’ 앞에선 무너지는 것일까. 무엇보다 고생해서 번 돈, 넉넉하지 않은 돈을 가치가 보장되는 곳에 안전하게 쓰고 싶어서다. 곧 ‘불황형 소비’다. 이불의 성능과 접시의 품질을 특급 호텔의 이름값이, 호텔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이 보증해 준다고 믿으므로.

집과 휴식의 개념이 달라진 것도 한 이유다. ‘밤 늦게 들어왔다가 아침에 허겁지겁 나가는 공간’이었던 집이 ‘공 들여 가꾸고 자랑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또 잘 자고 잘 쉬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에서 이유를 찾았다. 서 교수는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소비자들은 5~10세 때 이미 브랜드를 평균 100개 인지하는 등 브랜드와 물건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시장에서 성장했다”며 “때문에 경제력과 상관 없이 프리미엄 제품을 쓰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사회경제적 현실이 워낙 팍팍하니 도피하려는 심리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기자)’ ‘케세라 세라(될 대로 돼라)’를 모토로 삼은 세대는 대개 부어라 마셔라 하는 데서 행복을 찾았다. 요즘 ‘욜로(YOLOㆍYou Live Only Onceㆍ한 번뿐인 인생)족’은 다르다. 지금 당장 느낄 수 있는 조용한 나만의 행복을 찾는다. 호텔 물건이 오늘의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연다는 얘기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내 집뿐이리~” 특급 호텔에서 오라고 하면 당장 달려가겠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역시 집밖에 없다. 그런 집을 위해 작은 사치를 부려 보면 어떨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호텔의 꽃은 쾌적한 욕실. 무조건 심플하게! 이노메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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