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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피해 컸던 키코, 하급심 파기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도 소수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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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피해 컸던 키코, 하급심 파기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도 소수의견 ‘0’

입력
2016.10.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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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 등 사회적 파장 큰 사건에 전원일치

“판사 일색 대법관 다양성 결여, 소수에 대한 관심ㆍ고려 부족”

“서열주의로 논의 제약” 지적도

사회 변화 반영한 소수의견 중요… 노무현정부 땐 반대의견 활발

최근 5년간 전원합의체에서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 전원의 의견이 일치한 39건의 판결 가운데에는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미치는 굵직한 사건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논쟁이 활발한 것과는 달리 반대의견이나 별개의견, 보충의견 등 소수의견이 전혀 없어 국민의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포함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남기기도 했다.

고위험 통화 옵션 금융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해 막대한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이 낸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소수의견도 없이 은행 손을 들어주며 5년간의 법정다툼을 끝냈다. 앞서 1심에서 208개 기업 중 165곳이 패소했고 43개 기업은 일부 승소했지만 은행 책임 비율이 50% 이하에 머물렀다. 일부 재판부에서 은행책임을 70%까지 인정했지만 판결이 엇갈려 대법원의 판단에 피해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그러나 은행의 상품 설계가 중소기업의 피해를 막을 수 없는 구조라는 비판은 대법원 판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 개입한 혐의에 대한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 증거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정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파기환송 판결에도 소수의견은 없었다. 이 사건은 앞서 1심이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 반면, 항소심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유죄로 판단하고 실형을 선고했었다.

변호사 업계를 뒤흔든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과, 뇌물수수 사건에서 피고인이 받은 금품 액수가 형사판결에 따라 추징된 경우 세금을 물릴 수 없다고 본 사건 역시 전원일치로 선고됐다. 경영상 위기가 발생하면 통상임금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단서조항을 통해 기업측에 유리하게 선고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반대의견과 별개의견, 보충의견은 존재했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이 실종된 이들 판결은 너무 획일적인 시각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소수의견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해 법 해석과 적용을 끊임없이 진화시키고,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8년 4월 독일 국적을 갖고 북한을 방문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던 송두율 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북한에 방문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상 탈출에 포함된다”는 기존 판례를 변경했는데, 과거 축적된 반대의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 대해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전원일치 판결을 내린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다양성이 결여된 대법원 구성원들이 소수의 관점에 대한 관심과 고려가 없어 빚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대법관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고 (판결문에)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처음에 서로 다른 의견 갖고 있다가 논의하며 일치된 것이라면 서열에 의해 논의가 제약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법관들이 포함돼 있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도 “소수의견이 적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사고하는 대법관이 별로 없다는 것”이라며 “치열한 논증이 부족한 만장일치 판결에 국민들이 동의하고 설득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의 획일적 구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주영 대한변협 상고심개선위원장은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에 걸쳐 재임했던) 이른바 ‘독수리 5형제’ 대법관들이 반대의견이나 소수의견을 활발하게 냈지만, 지금은 1~2명이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에 대해 5 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놨는데 치열한 논쟁 끝에 결론이 난 것으로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대법관들의 의견이 합의나 토론 과정에서 일치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10년간(2005~2014년)간 미국 연방대법원의 전원일치(9명) 판결 비율이 44%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 사건 통계를 우리나라 대법원과 곧바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우리 대법원과 같은 최종심 역할도 하지만 판결의 약 60%는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헌법재판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법관들이 전원일치된 의견을 내놓는다고 해서 치열한 논의 과정이 없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대법관을 지낸 한 원로 법조인은 “소부(小部)에서 의견이 대립하지 않더라도 대법관 전원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거나, 사회적 관심 사안인 경우에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면서 “판결문을 쓸 때 대법원장이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을 낸 사람에게 그 의견을 판결문에 실을지를 묻는데 서로 수긍한 경우 쓰지 않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대법관 출신의 또 다른 법조인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문화상 서열이 높은 사람이 먼저 이야기하면 발언권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말석부터 말하도록 하는 등 대법관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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