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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고 구본무 회장과 화담숲, 그리고 장사법(葬事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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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고 구본무 회장과 화담숲, 그리고 장사법(葬事法)

입력
2018.06.04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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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우거진 경기 광주시 화담숲 입구. 고 구본무 LG 회장은 이 숲 인근의 자연장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서브원 제공
녹음이 우거진 경기 광주시 화담숲 입구. 고 구본무 LG 회장은 이 숲 인근의 자연장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서브원 제공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달리면 경기 광주시 도척면 화담숲이 나온다. LG 곤지암리조트와 인접한 해발 482m 발이봉 주변 135만여㎡(약 41만평)에 15개의 테마정원으로 조성된 화담숲은 한국적인 생태공간이다.

지난달 20일 숙환으로 별세한 고(故) 구본무 LG 회장은 1997년 국내 최초의 환경전문 공익재단 LG상록재단을 설립하고 화담숲을 만들었다. 숲 이름도 그의 아호인 화담(和談)에서 따왔다. 화담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생전에 숲과 새를 좋아한 구 회장은 휴일이면 화담숲을 거닐며 머리 식히는 것을 즐겼다. 등산복 차림의 구 회장을 화담숲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렸다.

타계 뒤 재벌 총수답지 않은 소탈한 성품과 정도를 추구한 경영자로서의 행적이 더욱 부각되며 구 회장 장례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발인을 전후해 구 회장이 소박한 자연장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은 머리 속에 화담숲을 떠올렸을 것이다. 자연에 그의 남다른 애정과 화담숲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무리는 아니었다. 그의 장례를 다룬 일부 언론 보도에서도 ‘화담숲에 잠들다’ 같은 표현이 사용됐다.

구 회장 발인을 전후해 LG측은 화담숲이 아니고 곤지암 인근에서 수목장 방식으로 안치했다고 사실관계를 바로잡기도 했다. 조용하고 간소한 장례를 원한 고인의 유지에 따라 구체적인 장소를 밝히지 않았지만 화담숲이 아닌 게 확실해 보인다.

국내에서 자연장의 시작은 2003년 서울시가 장사 등에 관한 조례에 도입한 ‘산골장(散骨葬)’이다. 이후 2007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이 전부개정되며 법률의 영역에 들어온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수목ㆍ화초ㆍ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 30㎝ 아래 땅 속에 묻는 것을 의미한다.

도입 초기를 돌이켜보면 우리 장사법은 죽은 이에 대한 추모보다 국토이용의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자연장지 입지를 결정하는데 진통이 적지 않았다. 장사법은 인정해도 국토계획법 수도법 문화재보호법 도로법 등 16개나 되는 다른 법률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지금은 용도지역 중 전용주거지역과 중심상업지역 등을 제외한 자기 땅이면 가능해져 규제가 대폭 줄었어도 다른 법률의 규정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약 10년 전 장사법의 문제점을 취재하며 만났던 전기성 전 고려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인생의 말년을 장사법 개정에 헌신한 인물이다. 보건복지부의 장사정책포럼 위원장을 맡으며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장사법의 한계를 지적한 전 전 교수는 “산 사람의 보건위생이 아니라 추모 정신이 장사법의 기본이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우리 사회에서 장사시설을 혐오시설로 보는 이유를 법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는 “외국은 도심이나 교회에 묘지가 있고 성인 등이 안치된 묘소는 관광지가 되는데, 우리는 고 김수환 추기경을 명동성당에 모시지 못해 용인묘역에 안장한 뒤 그리로 추모를 하러 간다”고 말했었다.

전 전 교수도 벌써 3년 전 고인이 됐지만 그가 주장한 내용은 이후 장사법 개정 과정에서 상당 부분 반영됐다. 일례로 2007년 장사법은 ‘시체나 유골을 땅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매장, 불에 태워 장사하는 것을 화장’이라고 정의했다. 2015년 일부 개정된 장사법부터는 ‘시체’란 적나라한 단어가 ‘시신’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장례를 치른다. 법은 이런 삶을 온전히 담아내야 하지만 우리 장사법은 아직 불완전하다.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산이나 들, 강이나 바다에 화장한 골분을 뿌리는 산골도 그렇다. 산골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없이 나오는 장면이고 현실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지만 법에는 아무런 규정도 없다. 10여 년 전부터 법의 테두리에 포함시키기 위한 논의가 이어졌지만 여전히 불법도, 합법도 아닌 애매한 상태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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