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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지속가능한 수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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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지속가능한 수다의 자세

입력
2015.12.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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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독서

금정연 지음

마음산책 발행ㆍ368쪽ㆍ1만6,000원

책이 대화의 주제가 된 게 언제적 일인가. 서평가 금정연의 '난폭한 독서'는 책을 둘러싼 지속가능한 수다의 건설적 예를 보여준다. 게티이미지뱅크
책이 대화의 주제가 된 게 언제적 일인가. 서평가 금정연의 '난폭한 독서'는 책을 둘러싼 지속가능한 수다의 건설적 예를 보여준다. 게티이미지뱅크

독서가 비주류 문화가 되면서 책에 관한 수다도 실종됐다. 수다의 중요성은 흥하는 분야―영화나 웹툰, 음식 등―를 둘러싸고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들이 오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본 여성 관객들은 터질 듯한 수다 본능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에 따로 공간을 만들었고, 나날이 업그레이드되는 편의점 도시락은 출시 때마다 인터넷에 ‘비교 분석’ ‘솔직 후기’ 글이 도배된다.

아카데믹한 리뷰든 말초적 감상이든, 수다는 다양한 시선을 유입시켜 해당 분야의 지평을 질적ㆍ양적으로 넓히고 생산자를 자극하는 선순환의 핵심이다. 책에 관한 수다로 이야기를 돌리면, 우리는 그걸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더듬어봐야 할 것이다. 책에 대한 대화가 씨가 마른 지금, 재미있는 책보다 절실한 것은 어쩌면 책에 대해 신명 나게 떠드는 일군의 사람들일지 모른다.

서평가 금정연씨의 ‘난폭한 독서’는 소설처럼 재미있는 서평 모음집이란 점에서 존재 이유가 충만하다. ‘소설만큼’ 재미있다는 말을 붙여주기엔 그가 고른 작가들이 어마어마하다. 프랑수아 라블레를 시작으로 미겔 데 세르반테스, 조너선 스위프트, 볼테르, 드니 디드로, 로렌스 스턴,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니콜라이 고골, 귀스타브 플로베르, 프란츠 카프카까지 10명 작가의 작품 13편에 대한 서평이 들어 있다.

다시 바람직한 수다의 자세로 돌아가면, 권위만큼 수다에 치명적인 것이 없다. 한때 인터넷상에서 흥겹게 진행되던 탕수육 ‘부먹 찍먹 논란’(소스를 부어 먹을 것이냐, 찍어 먹을 것이냐)이 수십 년 경력 셰프의 한 마디로 힘없이 종식된 것처럼, 정답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끝까지 답을 찾지 못하고 웅성거리는 것이 수다 본연의 모습이다.

서평가 금정연씨. 인터넷서점 알라딘 인문분야 MD로 일했고 지금은 여러 매체에 책에 관한 글을 쓴다. 마음산책 제공
서평가 금정연씨. 인터넷서점 알라딘 인문분야 MD로 일했고 지금은 여러 매체에 책에 관한 글을 쓴다. 마음산책 제공

저자는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듯 처음부터 전문가의 권위와 책임감을 뭉개고 시작한다. 라블레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서평에서 러시아 평론가 미하일 바르친을 인용하며 작품의 내부로 접근하던 저자는 갑자기 “설명할 자신이 없다”며 개인적인 푸념으로 빠진다. “하지만 친구여, 생각해보라. 일개 서평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박사님들이 왜 필요하겠는가?” 푸념하던 저자는 “이런 글을 쓰고 내가 얼마를 받는지 아느냐”며 독자를 몰아세우기에 이르고 독자는 저도 모르게 ‘그럼 아는 만큼만 떠들어보라’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다른 서평에선 변사처럼 텍스트 사이를 기웃대며 ‘썰’을 푼다. 걸리버가 표류한 소인국 릴리퍼트에서 줄타기로 관리를 뽑는 장면을 놓고는 “매번 ‘유례없는’ 인사 참사로 고민하는 한국의 행정부에서도 한 번 검토해볼 만한 방식”이라고 평하는가 하면, 볼테르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조작했던 사실을 얘기하며 “나 역시 이 책을 내며 가명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는 둥 영양가 없는 소리를 해댄다.

저자의 다분히 의도적인 산만함에선 강한 경계심이 내비친다. 하나의 해석이 정답으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경계. 정답이 등장하는 순간 수다는 종식되고 적막강산은 불모의 땅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블레는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는 걸 집요하게 반대한다. 설령 그 안에 자신의 신념이 녹아 있을지라도 그것만을 주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작품은 단순한 신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설이다.”

금정연 서평모음집 '난폭한 독서'
금정연 서평모음집 '난폭한 독서'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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