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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보는 점자 스마트워치… 시각장애인에 ‘IT 라이프’ 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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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보는 점자 스마트워치… 시각장애인에 ‘IT 라이프’ 선사하다

입력
2016.07.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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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점자 정보단말기에 충격

크기ㆍ가격 90% 줄인 ‘닷 워치’ 개발

스티비 원더ㆍ보첼리 등 사전계약

칸 광고제 황금사자상 수상 쾌거

김주윤 닷 대표가 13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사무실에서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워치 '닷 워치'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김주윤 닷 대표가 13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사무실에서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워치 '닷 워치'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출시도 전에 13개국에서 13만개 이상 선주문, 유럽에 1,000여개 매장을 보유한 독일 유통업체 새턴과 공급계약 체결, 칸 국제광고제에서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제품 디자인과 혁신 부문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수상.’

창업한 지 2년도 안 된 점자 스마트폰 제조 스타트업 ‘닷’의 성과다. 스물일곱살 청년인 김주윤 닷 대표를 지난 13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번에 이렇게 성공을 한 것이냐”고 묻자 김 대표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쉬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전4기”라고 그는 답했다. 고교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로 유학을 떠난 이듬해(2011년) 온라인 이력서 관리 서비스 ‘드림스 링커’로 첫 창업을 했다. 미국의 유명 창업지원기관인 파운더스 인스티튜트에 입주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만든 인도인 개발자가 결혼을 한다며 떠나면서 1년10개월만에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당시에는 코딩(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못해서 인도 개발자가 다 했어요. 허무하게 끝나면서 ‘코딩을 배우자’ ‘배경이 비슷한 사람끼리 창업하자’는 교훈을 얻었죠.”

두 번째 창업은 유학생들이 유학 정보를 제공하는 아이템이었다. 유학원에서 학교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서를 써주면서 수백만원을 받고 있는 만큼 시장성이 커 보였다. 프로그램을 배워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고 워싱턴대 동창과 한국인 친구들을 채용했다. 직원이 1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을 때 ‘유학생이 미국에서 일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학교의 경고장이 날라왔다. 미국에서는 아르바이트도 학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유학 도우미 서비스는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세 번째 아이템은 우버처럼 트럭을 불러 화물을 운송해주는 서비스였다. “공동 창업자 3명 중에 제가 개발 능력이 제일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영업을 맡게 됐는데 왜 이 서비스가 필요한지 설명하는 게 힘들었어요. 매일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김 대표는 4개월 만에 지분을 모두 넘기고 사업에서 손을 뗐다.

창업 실패와 한국에서 전해진 어머니의 갑상선암 판정 소식 등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들른 교회에서 성공 아이템을 만났다. “시각장애인 친구가 목에 커다란 기계를 걸고 있어서 뭐냐고 물었더니 점자 정보 단말기라고 하더라고요. 거의 멜로디언만한 크기에 가격도 57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죠.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대표는 집에 돌아와 바로 시장 조사에 들어갔다. “전세계 시각장애인이 2억8,500만명, 이 중에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이 4,000만명이나 되는 거예요.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는데 문맹률이 90%나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점자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 개발에 바로 들어갔습니다.”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목표로 한 것이다.

어떤 장치를 만들지 한참 고민하던 차에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항상 차고 다니면서 거추장스럽지 않은 것이 시계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점자 스마트워치 ‘닷 워치’다. 닷 워치는 시계 화면이 있을 자리에 24개의 점자핀이 있다.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결하면 이 핀들이 튀어나오면서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점자로 알려준다. 옆면의 다이얼을 돌리면 시계, 날씨, 메시지, 내비게이션 등 기능을 선택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까지 거리를 표시해 시각장애인들이 길을 잃는 것을 예방해준다.

지난해 4월 시제품이 나오자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깔끔한 디자인에 기존 점자 정보 단말기와 비교하면 크기나 가격에서 10분의 1도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닷 워치 가격은 290달러(약 32만원)다. 미국의 유명 가수 스티비 원더, 이탈리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등 시각장애를 가진 유명인들이 사전 계약에 동참했다. 보첼리는 16일(현지시간)부터 유럽 전역에 방송되는 광고에도 출연했다.

구형 점자 정보 단말기. 멜로디언보다 약간 작은 크기에 무게가 2kg으로 목에 걸고 다니기 부담스럽다. 가격은 570만원이나 된다.
구형 점자 정보 단말기. 멜로디언보다 약간 작은 크기에 무게가 2kg으로 목에 걸고 다니기 부담스럽다. 가격은 570만원이나 된다.
'닷'이 개발 중인 시각장애인용 점자 태블릿. 스마트폰 크기에 가로, 세로 각각 12글자를 표시할 수 있다. 도형, 수학 학습이나 간단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닷'이 개발 중인 시각장애인용 점자 태블릿. 스마트폰 크기에 가로, 세로 각각 12글자를 표시할 수 있다. 도형, 수학 학습이나 간단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점자 태블릿ㆍ공공사업 등 영역 확대

“창업,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성공의 열쇠는 순수한 인내심”

김 대표는 점자 태블릿, 스마트폰, 공공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점자 태블릿은 가로 12자, 세로 12자의 점자를 동시에 표출할 수 있는 스마트폰 크기의 장치인데, 시각장애인들이 도형과 수학을 공부하고 테트리스 같은 간단한 게임을 즐기는데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사업 영역은 지하철, 버스, 대형 건물 등에 고정형으로 박혀 있는 점자 철판을 대체할 전망이다. ‘올라가는 곳’, ‘지하철 타는 곳’, ‘화장실’ 같이 죽어 있는 점자 철판이 아닌 ‘수서행 열차 3분 뒤 도착’, ‘역사 밖에 소나기’처럼 시시때때로 바뀌는 요긴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지하철역에서 시범가동 중인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김 대표는 “시각장애인들도 우리와 같은 정보 혜택을 누리며 살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시각장애인 아이가 닷 워치의 점자를 읽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세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김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부딪혀보고 실패도 해보면서 배우는 거죠. 그 길에만 있으면 스스로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애플 설립자)스티브 잡스 말대로 ‘성공하지 못한 기업들이 성공적인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순수한 인내심’ 아닐까요.”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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