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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막장 드라마

입력
2015.08.0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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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운명’ ‘아내의 유혹’ ‘에덴의 동쪽’…. 2008~2009년에 방영된 드라마들이다. 불륜, 출생의 비밀, 골육상쟁 등 지극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다뤄 논란이 됐다. 이전에도 ‘보고 또 보고’(1998년) ‘온달왕자’(2000년) 등 ‘엽기 드라마’‘욕하며 보는 드라마’들은 계보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너는 내 운명’ 등을 필두로 소재의 충격성, 과도한 폭력성, 비현실적 설정 등이 사회의 용인 수준을 넘어섰다. 언론은 이들에게 ‘막장 드라마’라는 명칭을 붙였다.

▦막장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막장은 일상어가 됐다. 막장 정치, 막장 폭력 등 갈 데까지 간 우리사회 부정적 현실이나 현상, 패륜적 행태 등을 설명할 때마다 막장이 접두어로 따라 붙었다. 그러자 실제 ‘갱도의 끝’ 막장에 광원들을 보내 석탄을 캐는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2009년 호소문을 냈다. “막장은 폭력이 난무하거나 불륜이 일상화한 곳이 아니라 30도 안팎의 고온을 잊은 채 땀 흘려 일하는 숭고한 산업 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이라며 막장 운운 자제를 호소했다. 그러나 반향은 크지 않았고 도처에서 현실은 더 막장으로 치달았다.

▦재벌가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일반의 삶과 담 쌓은 재벌의 내밀한 민낯만한 게 없다. 물론 내용은 호의적일 리 없다. 정치권 로비에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편법 상속, 경영권 승계 등 돈과 권력을 탐하다 벌어지는 가족들의 음모와 혈투, 측근들의 권모술수와 암투, 불륜 등이 거친 언어와 함께 드라마를 구성한다. 드라마가 논란이 되면 제작진은 늘 “상상력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눈치 빠른 시청자들은 안다. 드라마는 현실을 투영하는 거울이라는 것을.

▦롯데그룹 사태 역시 막장 드라마로 가히 손색이 없다. 기승전(起承轉) 과정이 막장 드라마와 너무 흡사해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결말을 예측해 보며 흥미진진해한다. 이번 사태가 ‘기승전-동빈’이 될지 ‘기승전-동주’가 될지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결말 하나는, 막장 드라마에서도 그렇듯 골육상쟁을 벌인 재벌가에는 응분의 대가가 따른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소수 지분과 말 한마디로 그룹을 좌우하는 황제경영의 폐단을 없애는 재벌개혁이 될 수도 있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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