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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 인생 좀 결정해 주세요

입력
2018.07.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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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친구들은 어떤 질문 제일 많이 하던가요?”

누군가를 처음 만나, 상담이 업이라 말하면 으레 듣는 질문이다. 언제나 내 답은 같다. “잘하는 것 할지, 좋아하는 것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이요”다. 상담소를 찾았던 3만4,000여명 중 1만3,400명이 물었던 질문이니 과연 떡볶이와 순대, 짜장과 짬뽕만큼이나 양자택일의 스테디셀러가 아닐까 싶다.

10대, 20대는 물론이요, 경력 단절을 고민하는 주부, 사직서를 쥐고 고민 중인 30대 직장인에게서도 적지 않게 받는 이 질문. 어쩌면 삶의 항로를 바꿔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주하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지난주에도 20대 중반의 청년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내 같은 질문을 했다. 예술적인 일을 좋아하지만, 그다지 뛰어난 것 같지 않아 취업 준비 중이라는 그. 많은 곳에서 물어보고 책도 보았지만, 각기 답은 달랐다며, 오늘은 결론을 내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물었다. “제가 어떤 답을 할 것 같아요?” “음···좋아하는 것을 해라? 대부분 자기 일 하시는 대표님들은 그런 말씀하시던데.” “아니죠. 대표님들은 일단 수익이 창출되는 일을 하라고 하죠! 어쨌든 좋아하는 일을 도전해 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저를 찾아온 것은 아닐까요? 왠지 저도 그 말해 줄 사람 같아 보여서. 하하.”

그의 동그래진 눈을 보며, 이어 물었다. “근데, 미안해요. 저는 답을 정해 주진 않으려고요. 대신, 혹시 일기 써요? 힌트는 왠지 거기 있을 거 같은데.”

어리둥절해 하는 그에게 내가 내준 숙제는 간단했다. 일기장을 펴 볼 것. 그리고 내 글에 ‘나는, 나와, 내가, 나의’ 같은 나를 지칭하는 단어가 많은지, 아니면 ‘걔랑, **형이, 우리가, 교수님에게’ 같은 타인, 또는 타인과 나를 묶어 지칭하는 단어가 많은지 세어보는 것이었다. 자아 중심적 사고를 하는지, 관계 중심적 사고를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써 내려간 글 속에서 힌트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는 압도적으로 후자의 단어들이 많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함께 그의 인생 연대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지금껏 살면서 기쁨을 느끼거나, 성취를 느낀 순간들을 적어 내려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만화 캐릭터를 따라 그릴 때마다 친구들이 “야, 너 진짜 만화가 같다! 나도 좀 그려주면 안 돼? 한 장만!”이라며 줄을 늘어섰던 경험, 처음 사생대회에서 받은 상장을 부모님께서 자랑스레 거실에 걸어 두었던 기억, 수학여행에서 빅뱅의 춤을 멋지게 소화해 내고, 여학생반 친구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던 순간들. 그의 기억 속 순간들은 일관되게 ‘관계 속에서 인정받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정반대의 청년도 있었다. 그의 일기장은 ‘I, MY, ME'로 가득했고,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도와준다는 아빠의 손길을 마다한 채 고무동력기를 7시간 만에 혼자 힘으로 완성했던 초등학교 3학년의 기억이었다. 이토록 극명히 다른 두 청년에게, 어찌 한 가지 답을 정해 줄 수 있을까.

각기 다른 실마리를 쥔 채, 돌아가는 두 청년을 보며 생각했다. WHY보다는 HOW의 콘텐츠가 많아진 시대. 유튜브에도, 서점에도 “**한 인생을 사는 법”이 즐비한 시대. 그 속에서 살아온 우리 세대. 어느덧 우리는 삶의 고민을 마주할 때마다, 사유 대신 타인에게 결정 대행을 요청하는 것이 익숙해진 건 아닐까.

오늘도 상담을 위해 노트북을 편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해요?”, “워킹 홀리데이를 가야 하나요? 세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하나요?” 타로도, 점성술도 배운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인생을 선택해 줄 도리가 없다. 대신 오늘도 질문을 건넨다. 네가 아는 너는 어떤 사람이냐고.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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