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경성 기자

등록 : 2017.12.30 15:30

북한 주민들 불편케 하는 김정은 ‘사진 정치’

등록 : 2017.12.30 15:30

김정일 시대보다 많아진 ‘1호 사진’ 사진 실으려 노동신문 증면 하기도

하지만 작위적 연출에 도리어 반감 “잔혹한 지도자 인식 없애려” 의심

“최고존엄 사진 훼손 조심 성가시고 담배 말아 피울 신문 부족” 불평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군의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 개건된 삼지연군 여관과 삼지연읍 종합상점, 삼지연읍에 신축된 주택, 완공을 앞둔 삼지연 청년역과 삼지연못가역 등 시설들을 시찰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전했다. 이날 신문에 실린 김정은 사진은 50장에 달한다. 연합뉴스

‘1호 사진’. 북한 주민들은 최고지도자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이렇게 부른다. 김정일 집권 당시 1호 사진은 드물었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지 연출에 관심이 많았다지만 좀체 화면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은신(隱身)을 통해 그는 카리스마를 확보했다.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아들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다르다. 1호 사진이 흔해졌다. 게다가 갈수록 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한 해 가장 많은 1호 사진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날은 김정은 부인인 리설주가 처음 제 이름으로 등장한 7월 26일이었다. 6개 면에 1호 사진 28장이 게재됐다. 올해는 노동신문에 들어간 김정은 사진이 50장에 이른 날이 있었다.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 이튿날이었다. 그는 매년 이맘때쯤 백두산에 오르곤 했다. 그날 노동신문은 사진을 소화하려 평소보다 4개 면이 많은 10개 면을 찍었다.

김정일이 감독이라면 김정은은 배우다. 얼마 전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는 “최근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대도시들에서 ‘원수님(김정은)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이 모인 장소에서 ‘원수님 시대 들면서 노동신문에 1호 사진이 진짜 많아졌다’, ‘원수님이 사진 찍는 걸 너무 좋아한다’ 같은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는 평양 소식통의 전언을 인용해서다. 이 매체에 따르면 뉘앙스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이는 김정은의 ‘사진 정치’가 의도와 달리 오히려 주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별 정치적 성과 없이 단기간에 황급히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이미지 정치였다. 조부인 김일성 주석과 비슷한 차림새로 주민들과 접촉하거나 경제현장을 부지런히 찾아 다녔고 군사지도자 면모를 부각하려 일선 부대를 방문해 여유 있게 웃기도 했다. 그리고 사진 안에, 그 장면을 담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최룡해 당 부위원장 등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고 노동신문이 9일 전했다. 신문은 김정은이 강설을 헤치고 등정했다고 전했지만 사진 속 그의 옷과 구두는 말끔하다. 연합뉴스

사진도 훌륭하다. 노련한 이미지 기획자들 및 영상 전문가들이 각각 연출과 촬영을 맡아서다. 감격하는 조연과 환호하는 엑스트라가 주연 배우의 자기도취 연기를 더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요즘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데일리NK가 인용한 소식통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원수님이 카메라를 의식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고모부(장성택) 숙청 이후 주민들 인식에 자리잡은 ‘피도 눈물도 없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려고 더 유난히 사진에 공을 들인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고 한다. 작위적 연출의 부작용일 수도 있다. 9일 노동신문에 실린 백두산 등정 사진을 보면 강설을 헤치고 올라온 사람치곤 김정은의 옷과 구두가 너무 말끔한데 백두산 정상까지 차량 운행이 가능하다는 걸 주민들은 안다.

정서적 불편뿐 아니다. 남발된 1호 사진은 여러 모로 주민들을 성가시게 만든다. 일단 조심해야 한다. 부담스런 최고존엄이 내 곁에 자주 나타나는 경우와 비슷하다. 사진이 훼손되거나 할 경우 정치범 수용소행(行)을 각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신문지면에 1호 사진이 많아져 담배 말아 피울 종이를 구하기 어렵다”는 불평도 나온다고 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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