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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돌멩이랑 파도랑

입력
2016.10.2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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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몰이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최종회에서 왕권을 받은 세자 이영은 높다란 어좌에 오르지 않고 그 앞 계단에 내려앉는다. 놀라는 신하들에게 그는 백성들과의 높낮이, 신하들과의 거리를 좁히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그렇게 앉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 장면이 매우 생소해 보였다. 왕조 시대가 아닌 오늘의 대통령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그랬을까. 지금 청와대는 구중궁궐보다 더 깊디깊은 듯하다. 대통령은 국민들 곁으로 다가오려 하지 않고, 몇몇 측근 인사와의 거리만 끈끈하게 밀착하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 청와대에서 내려보냈다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2015년 5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1,608명, 도합 9,473명의 명단의 실체가 확인되었던 것이다. 안학수 시인도 들어 있나 찾아보니 포함돼 있었다.

‘블랙리스트 예술가’ 안학수 시인의 동시 ‘돌멩이랑 파도랑’을 읽어 보자. 파도는 돌멩이를 사랑해서 만져 주어 자신이 “하얗게 맑아지”고, 돌멩이는 파도를 사랑해 맑은 파도를 받아서 “색깔마다 고와진”다. 굳고 단단한 돌멩이와 출렁이며 드나드는 파도, 둘은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서로 쓰다듬고 비벼 주”다 보니 “자꾸 맑아지고 매일 고와지”지 않는가. 그러면 강산조차 말끔해진다. 블랙리스트 예술가의 눈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서 사랑하는 행위로 저 자신과 세상까지 맑아지고 고와지는, 신비 아닌 신비가 환히 보인다. 블랙리스트 예술가의 마음은 시커멓지 않고 순수하고 그 눈은 이토록 밝다. http://www.hankookilbo.com/v/0abb634242a64afca79799b09f8564f4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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