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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내를 잃은 뒤 감당 못할 절망… 그리고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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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내를 잃은 뒤 감당 못할 절망… 그리고 깨달음

입력
2016.03.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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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논

폴 하딩 지음ㆍ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352쪽ㆍ1만4,000원

13살의 케이트는 9월의 어느 오후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여 죽는다. 이제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가능한 한 세밀하게, 모든 기억을 소환해서, 그 애가 살아있을 때의 풍경과 시간을 촘촘히 복기하는 것. 아이의 이마에 들러붙은 축축한 머리칼, 함께 누워있던 목초지의 풀냄새, 달리기를 하다 넘어져 무릎에 새겨진 붉은 생채기. 모든 감각을 소환해 아이를 떠올린다. 떠올리다 보면, 어떤 기억은 그 순간보다도 더 선명하다. 스쳐 지나간 줄만 알았던 찰나들, 일상을 채웠던 생기들이 하나하나 세포 속에 각인되어 있다.

2009년 데뷔작 ‘팅커스’로 퓰리처상을 받은 폴 하딩의 신작이 출간됐다. 하딩의 두 번째 소설 ‘에논’은, 전작에서처럼 뉴잉글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크로스비 집안의 찰리와 그의 딸 케이트의 사연을 풀어간다. 그러나 “내 외동딸 케이트는 일 년 전 9월의 어느 오후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였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내 딸의 삶은 그 시점을 기준으로 무효화 되어버렸는데도 내 삶은 그 후로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모가 어떻게 그 절망을 감당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소설 전부를 할애한다.

아이가 죽은 뒤 아내인 수전마저 떠나고, 자신과 아이가 나고 자란 ‘에논’에 홀로 남겨진 찰리는 진통제를 남용하고 술을 마시며 슬픔을 감당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럴수록 딸에 대한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질 뿐이다. “나는 내 자식에 굶주렸고 무덤에서 나 자신을 먹어치우는 데 골몰했으며, 그리하여 두 세상의 중간쯤에서, 아니면 내가 조금 더 넘어가서, 어느 날 밤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아이와 만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산 자들의 에논에서 젖은 풀밭이나 낙엽, 또는 눈 쌓인 땅에 맨발을 디디고 다시 일어난 내 딸과, 부디 단 한마디나마, 마지막 인간의 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찰리는 소설 내내 슬픔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상실에 대해서라면,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지속적으로 ‘전해’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죽음의 실감에서 좀 무뎌질 때라고 나 역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어딜 가나, 언제나, 네가 너무도 보고 싶다고, 너무도 사랑한다고, 그리고 이건 모두 꿈이라고, 꿈에서는 모두 그런 식이라는 걸 너도 알 거라고, 그리고 단 한 순간도 너를 내 마음속에서 지우려 한 적 없다고” 말하는 부모에게, 상실감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것을 300여 쪽에 걸쳐 묘사되는 찰리의 슬픔을 통해 깨닫는다.

소설은 단호하게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자주 쉼표로 호흡을 이어 붙인다. 정교한 묘사와 유려한 문장은 종래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생을 이어 붙이는 찰리를 보여준다. 살아남은 아버지가 이어 붙이는 생의 안간힘들 앞에서 우리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 기억에서 벗어나자는 말이, 그날을 망각하자는 말과 동일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수긍해야만 그 기억을 가지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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