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태성 기자

등록 : 2017.10.13 04:40

세계를 제패한 국가들엔 특별한 비밀이 있다

김태유ㆍ김대륜 ‘패권의 비밀’

등록 : 2017.10.13 04:40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 뉴욕의 증권거래소. 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은 채무국으로 전락했고, 미국은 군수품 생산 기술을 산업 기술로 전환하면서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렇기에 '패권의 비밀' 저자들은 금융보다는 제조업이 세계 패권의 향방을 결정짓는다고 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패권의 비밀

김태유, 김대륜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 발행ㆍ420쪽ㆍ2만3,000원

미국 캘리포니아학파의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에코리브르), 영국 고고학자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 중국계 미국 역사학자 레이 황의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푸른역사)처럼, 18세기를 전후해 발생한 동양에 대한 서양의 대역전 드라마를 좀 더 대중적인 필치로 일별해 볼 수 있는 책이 국내 학자 손에서 나왔다.

경제학자 김태유, 서양사학자 김대륜이 함께 써낸 ‘패권의 비밀’이다. 세계 패권이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이동한 과정을 추적했다.

일단 거시적인 눈으로 세계사를 훑어 주는, 박력 넘치고 대중적으로 서술된 책이 우리나라엔 왜 없을까 싶었던 부러움은 좀 가시게 됐다. 포메란츠는 서구가 잘나서 역전에 성공했다는 서구 우월주의를 맹폭한다. 모리스는 정치적 올바름에 눈치보지 않고 지금 서양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건 뻔한 사실 아니냐는 ‘쿨’한 태도에서 출발한다. 레이 황 역시 동양의 과거 영광을 부여잡고 ‘아시아의 장기정체’를 ‘오래된 미래’ 같은 말로 미화할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패권의 비밀’의 경우 전체적인 글 구성, 논지 전개, 문체에서 논문 투가 제법 많이 남아 있는 건 좀 아쉽다. 하지만 대중적 서술에 애쓴 흔적이 역력한 문장들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력’ 하나는 확실하다. 서구의 연구 성과를 열심히 배웠고 우리 연구 성과도 그만큼 쌓였으니, 포메란츠 등처럼 이제 이 정도 발언쯤이야 우리도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문장마다 깊게 배어 있다.

저자들의 출발점은 이렇다. 제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경제체제에 기반한 사회통합’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화려해 보이는 제국이라 해도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한 가지 차이점은, 명시적으로 전쟁을 끌어들인다는 부분이다. 심지어 ‘경제와 전쟁의 선순환’ 같은 얘기도 꺼낸다. 요즘 북한과 미국은 어떨까 싶다.

저자들이 보기에 세계사는 농업제국, 상업제국, 산업제국으로 나아간다. 땅만 보는 농업은 생산성이 낮기에 정복 전쟁으로 땅을 더 확보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른다. 로마 제국, 중국 여러 왕조의 역사가 이것이다. 상업은 거대 유통망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지만, 결국 그렇게 거래한다는 게 차나 후추 같은 농업 생산물이다. 상업제국 역시 농업제국의 한계 안에 있다. 농업·상업제국의 성장 한계를 돌파해 내는 게 바로 현대의 산업제국이다. 산업제국은 농업에선 벗어났지만, 재생산 여건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저자들은 농업·상업·산업제국에 어울리는 경제체제에다 ‘단순 재생산’, ‘확대 재투자’, ‘확대 재생산’이란 이름을 각각 가져다 붙인다.

이 틀에서 보면 척 봐도 예선탈락자는 당연하게도 동양을 상징하는 중국이다. 진나라 이후 청나라까지 농업제국으로 일관했으니 ‘역시나 망했고, 또 다음 타자가 들어섰습니다’ 외엔 더 말할 게 없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 책에서 중국사를 매몰차게 내다 버리는 이유를 설명해 뒀는데, 이해는 하면서도 ‘그렇다면 왜 중국은 농업제국으로만 일관했는가’에 대한 얘기가 아예 빠져 버린 건 전체적 그림 차원에서는 좀 아쉽다.

저자들은 이후 스페인에서 미국까지, 세계 패권의 이동 과정을 그리는데, 기존 서술과의 차이점이라면 ‘인간의 노력’을 복권했다는 점이다. 포메란츠 같은 이들은 ‘서구가 잘나서 더 발전했다’는 서구 우월주의를 부수기 위해 너무 우연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산업혁명을 두고서는 참 딱 맞아떨어지게도 영국은 땅 위에 석탄이 그냥 굴러다니는 나라여서 별다른 채굴 비용 없이 석탄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 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모리스도 지리적 요인을 강조하다 보니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이에 반해 저자들은 인간의 노력, 구체적으로 ‘산업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이런저런 여건이 좋고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그걸 활용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노력이 없다면, 성장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다. 그래서 ‘메가뱅크’ 어쩌고 하던 말이 유행처럼 떠돌던 때에 금융보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장하준의 목소리도 드문드문 느껴진다.

이에 관련해 눈여겨볼 것은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 이동 과정이다. 적극적인 산업정책으로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세계제국으로 발돋움한 뒤 영국 자본가들은 그만 ‘신사 자본가(Gentleman Capitalist)’로 전환해 버린다. 가장 많은 자본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생산현장에서 땀 흘리기보다, 기존의 부에서 흘러나오는 배당금, 채권·주식 같은 금융소득에 의존하는 이들이 됐다. 광대한 식민지는 이를 가능하게 해 줬다. “1차 산업 혁명 시기 수많은 제조업자, 숙련공, 기술자, 발명가들이 보여 주었던 모험 정신은 점차 사라졌다. 그 대신 주기적 배당금 소득이 가져다 주는 안정성이나 단기적 금융거래로부터 얻는 일확천금에 대한 허황된 꿈이 지배했다.” 기업가 정신의 사망원인은 정치적 상황이 불안한 저개발국이 아닌 이상, 정치가에 의한 타살보다 불로소득에 취한 자살일 가능성이 더 높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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