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늙어도 좋아

알림

늙어도 좋아

입력
2016.07.01 16:20
0 0
번식이 끝난 늙은 동물은 무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우러져 살고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번식이 끝난 늙은 동물은 무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우러져 살고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앤 이니스 대그 지음ㆍ노승영 옮김

시대의 창ㆍ348쪽ㆍ1만6,800원

한 무리의 동물에서 늙은 개체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주름살이나 검버섯 같은 노화의 징후들이 풍성한 털에 가려져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늙은 동물이 인간의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동물학자들 대부분은 진화적 측면에서 번식에 초점을 두어 누가 가장 건강한 새끼를 낳는지, 어떤 형질을 가진 개체가 새끼를 더 많이 낳는지에 주목할 뿐 번식이 끝난 동물에는 관심이 없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번식능력을 잃은 늙은 동물은 살아 남아 집단의 식량을 축내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더 합리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동물집단에 늙은 개체들이 섞여 있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공존한다. 이들은 집단에서 존경 받을까, 멸시 받을까. 손주에게 옛날 얘기를 들려줄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있을까.

캐나다의 원로 동물학자 앤 이니스 대그는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에서 전성기가 지난 늙은 포유류와 조류의 삶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늙은 동물의 사회적 행동이라는 낯설고 흥미로운 주제를 탐구한다. 저자는 코끼리, 고래,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늑대, 사자, 사슴, 갈매기 등등 다양한 동물의 사례에서 집단 내 다른 구성원들이 늙은 개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배우자나 자식과는 어떻게 교류하는지, 노화가 지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폈다.

늙은 암컷 랑구르원숭이의 존재 가치를 묻는다면 한 마디로 ‘성질머리’다. 가장 늙은 암컷의 귀에는 흉터와 뜯긴 자국이 수두룩한데 모두 싸움질을 통해 얻은 훈장이다. 랑구르원숭이 무리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것은 중년의 전성기 암컷이다. 번식 능력이 한창인 이들은 새끼를 낳고 돌보며 무리의 중심이 되는데, 같은 무리의 늙은 암컷에게 대단히 모질게 군다. 좋은 자리를 뺏고 겸상도 허용하지 않는 바람에 늙은 암컷들은 늘 무리에서 약간 떨어져 외톨이로 지낸다.

그러나 이들이 눈을 빛내는 때가 있으니 외부자들이 무리를 습격할 때다. 1972년 8월 12일 수컷 랑구르원숭이 한 마리가 다른 무리의 새끼를 납치하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새끼에게 상처가 나자 무리의 두 할머니, 솔과 폴리스가 뛰쳐나와 수컷을 공격했다. 이후 이어진 여덟 번의 습격에도 어김없이 솔이 출동해 어미와 새끼를 지켰다. 이들은 다른 무리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기도 한다. 전성기 암컷이 새끼를 꼭 끌어안고 있는 동안 이 사나운 할머니들은 전선에서 물고 뜯으며 전리품을 획득해 온다.

성질만이 이들의 무기는 아니다. 어떤 동물들에겐 교미를 할 때 젊음보다 늙음이 더 매력이 되기도 한다. 1996년 보스턴 출신의 연구자 3명은 늙은 침팬지 암컷이 수컷의 눈에 젊은 전성기 암컷보다 더 섹시하게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8년간 무리를 관찰했다. 그 결과 수컷이 발정기의 젊은 암컷보다 발정기의 늙은 암컷에게 우선 접근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고릴라 수컷에게서도 같은 행동을 발견했다.

인간의 젊은 미녀에 대한 절대적 추앙을 “임신 확률이 높고 후대에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 줄 수 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면 침팬지와 고릴라의 선택엔 무슨 이유가 있을까. 학자들은 이 암컷들이 “새끼를 기르는 데 이미 성공한 적이 있으므로 수컷의 선택은 가임력이 있고 유능한 어미임이 입증된 암컷을 수정시킨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늙은 동물은 ‘지혜’와 ‘연륜’으로 집단에 기여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는다. 저자는 이를 보며 “동물이 오히려 인간보다 슬기롭게 노년을 헤쳐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동양의 장유유서, 서양의 기사도 정신 등 노인에게 호의적인 사회적 공감대가 일순 사라진다고 가정할 때, 나이든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까.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