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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할 생각이 있느냐'가 열쇠다

입력
2017.07.0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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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거의 부정적

'할 생각'도 선후-완급 로드맵 함께 해야

협치 진정 원하면 야당 손 꽉 잡아 줘야

G20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독일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오전(현지시간)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해 이경수 주 독일대사, 폰 슈트라우젠부르크 의전 차장 등 마중 나온 인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사열받고 있다. 연합뉴스
G20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독일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오전(현지시간)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해 이경수 주 독일대사, 폰 슈트라우젠부르크 의전 차장 등 마중 나온 인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사열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 달 전쯤 후배가 쓴 글을 읽다가 한 지점에서 "아, 이거다"라며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아니, 무릎을 쳤다기보다 여름 소나기에 흠뻑 젖거나 죽비로 어깨를 두들겨 맞을 때의 쾌감을 느꼈다는 게 옳겠다. 무슨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게 아니라 그동안 풀지 못해 낑낑거리던 매듭의 단서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그 대목은 20세기 미국 사회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조드 일가의 어머니 말을 인용한 것이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할 생각이 있느냐가 문제죠.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해요… 하지만 할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겠죠.”

그렇다. 문제도 답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할 생각이 있느냐'였다. 사실 '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할 수 없는 이유부터 찾는 게 인지상정이다. 귀찮고 수고스럽고, 때론 관행과 관례를 들이대는 기득권과 지루한 싸움도 벌여야 한다.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저임금 노동자를 살리려다 영세 자영업자를 죽이는 것이어서 안 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화하는 일은 국민부담으로 선심을 쓰는 포퓰리즘인 데다 비정규직 업무의 성격을 간과한 것이어서 안 되고, 탈핵과 원전 폐기는 장기 전력수급과 에너지원에 대한 이해 부족에다 원자력산업을 키우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안 되고, 통신료 인하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어서 안 되고, 검찰개혁과 재벌개혁 시장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은 조직특성과 현실을 무시한 것이어서 안 되고… 늘 이런 식이다. 종종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근사한 말도 뒤따른다.

그러나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면 일이 되는 방향으로 문제를 보게 되고 방법과 대안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소한 곳에서 의외의 단서를 발견하고, 모색과 토론 과정에서 보다 확장된 시야을 얻을 수도 있다. 할 수 있을까라는 과거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넘지 못할 장애물로 여겨지던 제도ㆍ법령ㆍ인식ㆍ사고도, 할 생각이 있느냐는 프레임으로 풀어 가면 어떻게든 모순과 한계를 고치고 개선해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른바 '궁즉통(窮卽通)'이다.

물론 이런 의욕도 일의 선후와 완급, 강약을 헤아리는 지혜와 세밀한 로드맵이 함께 해야 한다. '할 생각'만으로 밀어붙이기 어려운, 다층적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 많아서다. 저임금 청년실업 비정규직에서부터 양극화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 나아가 외교안보 교육 복지, 심지어 정치시스템과 정치문화에 이르는 우리 시대의 누적된 과제를 한칼에 풀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큰 논란을 낳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독트린이 아쉬운 것은 이런 맥락이다. 거센 저항을 예상하면서도 큰 결단을 내린 것과 달리, 가는 길과 가야 할 길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지 못해 '제왕적 조치'라는 반발까지 나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도 방향은 분명하되 접근은 더욱 정교하고 유연했으면 좋겠다. 할 생각을 서투르게 펴면 개혁도 청산도 놓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핵심은 여전히 '할 생각이 있느냐'이다. 익숙하고 편한 것에 길들여져 온 타성으로는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기로 작정한다면 그것은 곧 기회다.

모레면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이다. 수위 높은 인사 원칙을 훼손하는 바람에 스타일은 팍 구겼지만 짧은 시간에 사회 곳곳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것은, 공약이든 의욕이든, 뭔가 할 생각으로 덤빈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치권엔 찬바람만 쌩쌩 분다. 문 대통령도 국정지지율에 기댈 뿐 '할 생각'을 국회와 야당엔 그다지 할애하는 것 같지 않다. 여당 지도부 역시 말만 많을 뿐 생각이 없다. 대학교수와 시민단체 출신이 압도적인 내각의 경우 지도도 없이 생각만으로 길을 나서 야당과 내내 충돌할까 봐 걱정이다.

"할 생각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겠죠"라는 그 어머니의 겸손과 자신감이 부럽다.

##칼럼 서두에서 언급한 후배는 한국일보 이진희 기자이고 글은 5월29일자 신문에 게재된 '정의가 복지가 될 때'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

이유식 논설고문(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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