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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재인, 이재용, 오바마, 잡스

입력
2018.08.09 18:5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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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실리콘밸리에서 경영자들과 만찬 중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 애플 CEO에게 어떻게 하면 애플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플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다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애플이 미국 내에서 고용한 인원은 6만여명에 불과했지만, 해외에서 고용한 인원은 75만여명에 달했으니 오바마 대통령의 기대는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잡스는 단호하게 “그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2018년 7월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삼성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도 삼성이 국내에 더 많이 투자하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 부회장은 “대통령께서 멀리까지 찾아 주셔서 큰 힘이 됐다”며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어떻게 잡스는 할 수 없다고 대답한 일을 이 부회장은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대답했을까? 애플이 하지 못하는 일을 삼성은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잡스는 애국심이 없어서 손해를 감수하면서 국내에 투자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 부회장은 투철한 애국심으로 손해를 무릅쓰고 노력하겠다고 대답한 것일까? 누가 진실을 이야기한 것일까?

답은 기업의 이윤 실현 방식이 변화했다는 데 있다. 1980년대 이전까지 기업은 대부분의 일을 직접 수행하며 비용을 내부화해 이윤을 창출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기업은 제품 기획과 같은 핵심 역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을 하청, 프랜차이즈, 플랫폼 노동 등의 형태로 기업 외부로 내보냈다. 비용을 외부화해 이윤을 높이는 전략이었다. 과거 같으면 기업이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면 주가가 폭락했지만, 지금은 정리해고를 하면 주가가 올라간다.

실제로 애플이 상품개발을 제외한 생산, 조립, 유통을 해외로 내보내면서 주주들은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 애플 주가는 2003년 7달러에서 2012년 600달러로 90배 가까이 높아졌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삼성도 할 수 없다. 만약 삼성, 현대차, SK 등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자본의 필요가 아니라 정부의 요구 때문에 불필요한 수십조 원을 투자한다면 그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폭삭 망할 것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두 번의 경제 위기를 재벌에 의존해 극복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어떻게 위기는 넘겼지만, 재벌에 의존해 모면한 위기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 심화된 사회로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잡스는 진실을 이야기했고, 이재용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분명하다. 국민의 열망인 재벌을 개혁하고, 재벌의 불법적인 승계 시도에 단호하게 대응하며, 공정한 경제 질서를 확립하는 일이다. 대기업이 국내에 투자하기를 원한다면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우수한 인적자원을 길러내 혁신역량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문제가 재벌 중심의 수출주도형 성장체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다시 재벌에 의존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전략은 하수 중에 하수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재벌 개혁이야말로 소수 재벌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가계 등이 함께 성장하고, 국민 성장을 이루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고 단언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초심으로 돌아가 담대하게 개혁의 가시밭길을 걸어라. 방향이 올바르다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국민은 인내할 수 있다. 국민이 함께 할 것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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