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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도서관에 배포된 창씨개명 미화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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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도서관에 배포된 창씨개명 미화 詩

입력
2016.06.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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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발간 시선집에 담겨

市, 해당 시 삭제 재발간 계획

인천시가 발간한 시선집 ‘문학산’ 표지. 인천시 제공
인천시가 발간한 시선집 ‘문학산’ 표지. 인천시 제공

인천시가 발간해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배포한 시선집에 창씨개명을 미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 담겨 논란이 일고 있다.

인천시는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의 해’를 기념해 인천을 배경으로 한 시와 인천 출신이 쓴 시 173편을 수록한 시선집 ‘문학산’을 지난해 12월 발간했다. 1,500부가 찍힌 시선집은 중ㆍ고교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 등에 배포됐다.

논란을 일으킨 작품은 시선집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인천 출신 홍명희(84ㆍ여) 시인의 ‘시인(詩人)의 모습’이다.

이 작품에선 창씨 개명해 얻은 일본식 성명을 예쁘다고 표현하고 일본식 성명을 품고 시를 꿈꾸는 소녀가 됐다는 시구가 나온다. 또 일제강점기를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日政’(일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시 일부분을 보면 ‘집에 돌아가 우리 선생님이 창시(씨) 개명해서/ 靑松波氏(아오 마쓰나미요) 선생님이라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도 당장 말씀하셨다/아 이름 한번 예쁘고나/ 너희 선생님은 詩人이시구나/ 종이에다 붓으로 먹물을 찍어 靑松波氏라고 쓰며 계속 감탄하셨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 시는 인천문인협회에서 추천해 시선집에 수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인천문인협회 측은 “시인이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 (창씨 개명된) 이름의 푸른 소나무와 파도에서 인천 월미도 앞바다 풍경을 떠올려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이 이 시의 핵심”이라며 “시인이 되가는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이지 창씨 개명을 미화하거나 찬양, 찬미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천시는 이날 시선집 자문위원회를 소집해 해당 시가 시선집에 수록된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회수해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과 문광영 한국문인협회 인천시지회장 등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시 관계자는 “문제가 된 시를 삭제해 시선집을 재발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다음은 ‘시인의 모습’ 전문.

나 초등학교 삼학년

日政때

창시 개명령이 내려

세상이 술렁거릴 때

어느 날 오후

우리 담임선생님이

창시 개명을 설명하시며

선생님도 이름을 바꾸셨다고

칠판에 靑松波氏(아오 마쓰나미요)라고 쓰셨다

집에 돌아가 우리 선생님이 창시개명해서

靑松波氏 선생님이라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도 당장 말씀하셨다

아 이름 한번 예쁘구나

너희 선생님은 詩人이시구나

종이에다 붓으로 먹물을 찍어

靑松波氏라고 쓰며 계속 감탄하셨다

나는 詩人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인천 사람이면 누구나 드나드는

인천 앞바다의 흰 모래 사장과

솔밭 사잇길

거기 하늘한 하얀 치마 저고리에

하얀 양산을 받쳐든 선생님을 생각하고

정말 선생님은 아름다운 詩人이구나 했다

그 후 나는

인천 월미도 앞바다와

靑松波氏란 이름을 품고

詩를 꿈꾸는 소녀가 되었고

지금도 선생님은 나의 詩人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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