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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화재] 고령환자들 덮친 검은 연기… 대부분이 화상 아닌 질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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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화재] 고령환자들 덮친 검은 연기… 대부분이 화상 아닌 질식사

입력
2018.01.26 18:3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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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지점엔 사용한 소화기 6개

초기 진화 나섰지만 실패한 듯

세종병원 본관 83명 입원 중

거동 힘든 입원 환자 꽉 차있던

2층 병실서 사망자 대부분 발견

아비규환이었다. 화마와 유독가스가 덮쳐 왔지만, 그들에겐 자력으로 탈출할 힘이 없었다. 노령에, 질병에 고통 받으면서도 완치만 되면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26일 화재로 모두 타버렸다.

전국에 한파가 몰아친 이날 오전 7시32분. “불이 났습니다. 빨리 좀 와주세요”라는 한 남성의 다급한 전화가 119로 걸려왔다. 경남 밀양시 세종요양병원. 일반 환자들이 입원한 세종병원과 노령 치매 환자들을 수용한 요양병원이 함께 있는 곳으로, 177명이 입원 중이었다. 신고자는 병원 원무과 직원으로 확인됐다.

오전 7시30분쯤(추정) 불은 1층 응급실 출입구 안쪽 천장에서 연기와 함께 시작됐다. 공개된 폐쇄회로(CC)TV에는 희뿌연 연기가 보이기 시작한 뒤 30초 정도 지나 응급실 전체가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연기로 가득 차는 장면이 담겼다. 1분 가량 후 응급실 한 쪽에서 마침내 불꽃이 튀었다. 불이 나자 밖으로 급히 뛰쳐나갔다는 간호조무사는 “갑자기 (응급실) 천장에서 불이 났다”고 전했다. 누전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나 화재 원인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불과 함께 시커먼 유독가스가 중앙계단을 통해 건물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 직원이 초반에 불을 잡으려고 소화기를 6개나 썼지만 소용 없었다”고 했다.

대피가 시작됐다. 발화 지점인 응급실에는 환자가 없이 비어있었다. 하지만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뼈가 부러지는 등 거동이 어려운 와상(臥床)환자들이 입원해 있던 2층은 사정이 달랐다. 손경철 병원 이사장은 “35개 병상이 다 차 있었다”고 했다.

들이닥친 화마에 환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병실을 가득 채운 유독가스는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에게 치명적이었다. 환자들은 급한 대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침대 옆에 있던 물티슈, 손수건에 물을 묻혀 입과 코를 막았다. 1층, 5층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지만 화재로 쓰러져간 이들 대부분(18명)은 2층 입원 환자들이었다.

소방대원 선발대가 도착한 건 7시35분으로 신고 접수 후 3분만이다. 가곡 119안전센터가 가까이 있었고, 왕복 2차선 도로변에 병원이 있어 소방차 접근이 제천 참사 때와 달리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심각했다. 소방 관계자는 "선착대(선발대)가 도착했을 때 대원들이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병원은 이미 짙은 연기와 화염으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1층 출입구로 소방대원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 했지만, 화염과 유독가스에 막혔다. 소방대원들은 할 수 없이 소방 사다리차를 타고 병원 측면으로 접근해 2층에 사다리를 놓은 뒤 건물 진입에 나섰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려다 연기를 참지 못해 다시 병실로 들어가는 환자도 눈에 띄었다. 몇몇은 옥상으로 향했다. 병원 뒤편으로 환자들이 피난용 수직구조대(미끄럼 타듯 내려올 수 있는 비상탈출용 기구)를 타고 내려왔다. 목격자 우영민(35)씨는 “슬라이드(수직구조대)를 통해 환자들이 계속 내려왔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담요로 감싸 업고, 부축해가면서 구조하느라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온 환자들은 심폐소생술 같은 응급조치를 받은 뒤 밀양과 부산 소재 병원으로 옮겨졌다. 25명은 병원에 도착한 뒤 숨졌다.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은 “(3층) 중환자실에 산소마스크를 꼽고 있는 중환자들 15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무사히 대피했다”고 밝혔다. 중환자실 환자 중 8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치매 등 노인성질환자가 대부분인 요양병원으로도 구조대원들이 투입됐다. 화염이 번질 경우, 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구조대 손에 이끌려, 창문을 열고 1층으로 뛰어내려, 의료진 부축을 받고 계단으로 내려오는 등 94명, 입원 환자 전원이 탈출에 성공했다.

구조작업의 어려움 못지 않게 불길이 매트리스와 이불, 의료기기 등에 옮겨 붙으면서 쉽게 잡히지 않았다. 큰 불은 9시29분, 두 시간 가량 사투를 벌인 뒤 세종병원 1층에서 겨우 잡혔다. 완전 진압은 그보다 한 시간 정도 더 지난 10시26분이었다.

밀양=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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