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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박정희와 이건희라면 어떻게 했을까?

입력
2015.06.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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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강북삼성병원의 의료진이 18일 오전 지원근무를 위해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강북삼성병원의 의료진이 18일 오전 지원근무를 위해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서울외곽순환도로처럼 미국에도 워싱턴DC를 둘러싸는 ‘I-495’라는 순환고속도로가 있다. ‘I-495’는 원래 전구간이 무료지만, 최근 통행량 급증으로 속도가 느려진 일부 구간에는 기존 도로 옆에 민자 유치방식의 유료 도로가 신설됐다.

그런데 이 유료도로 통행료가 지난해 이 곳에 온 이방인 눈에는 참 신기했다. 전광판의 통행료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같은 구간이라도 어느 때는 1달러, 또 어느 때는 6.25달러로 천차만별이다.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유료도로 옆 무료도로 주행속도에 따라 변한다는 설명이다. 무료도로 차량이 ‘씽씽’달리면 주행거리 당 통행료가 최저(마일당 0.2달러)로 떨어지지만, 무료도로가 혼잡해져 속도가 내려갈수록 마일당 최대 1.25달러까지 매겨진다는 것이다. 이용객에게 혜택을 준 만큼 통행료도 차별해서 받겠다는 것이다.

다인종ㆍ다민족 사회여서 구성원의 ‘정서적 동질감’이 약한 탓일까. 미국은 이처럼 감성보다는 합리주의를 주요 의사결정의 기반으로 내세운다. 그 덕분에 한국도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대응과정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 대통령 방미 연기에 동의해 준 것도 도움이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냉정한 평가와 대응은 결정적이었다.

이웃 나라 일본, 중국, 홍콩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한미간 연간 인적교류 규모가 300만명에 육박하는데도 미국 CDC는 ‘메르스 때문에 한국 여행을 취소할 필요는 없다’고 발표했다. 또 한국의 여행등급을 수족구병이 발생한 일본과 마찬가지인 제일 낮은 ‘주의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렇게 합리적인 미국 방역당국도 외래 전염병을 초반에 막지 못해 욕 먹은 적이 있다. 바로 불과 8개월 전 에볼라 환자의 미국 입국 때였다. 에볼라 환자 접촉 사실을 숨기고 서아프리카에서 입국한 환자가 사망하고, 치료하던 의료진마저 감염되면서 미국 사회에 공포가 확산됐다. 당시 미국은 에볼라 대응에 전권을 쥔 ‘차르’를 임명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차르 덕분인지, 아니면 당초 공포는 과장됐으며 원래부터 수그러들 운명이었는지는 몰라도 에볼라는 가라 앉았다.

이미 한국 언론에도 다수 소개된 ‘에볼라 차르’얘기를 새삼 꺼내는 건 에볼라 사태 전후로 미국 CDC 조직 구조에 아무 변화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반면 한국에서는 다행히 메르스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자, ‘방역체계 전면 개편’ 같은 거창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마거릿 찬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게 “미국 CDC를 포함한 전문가들과의 논의를 통해 감염병 대응 및 방역체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짤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ㆍ메르스 같은 비상사태를 수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제도ㆍ기구를 뜯어 고치는 구조적 해법이거나, 구성원의 자세와 대응 방식을 벼르는 기능적 해법이다. 단번에 화끈하게 풀기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해양경찰청을 해체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마치 대형 참사는 ‘구조적 문제’때문이지 사람의 책임은 아니었다는 식이다. 미국은 웬만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부서 이름 바꾸고 책상 옮기는 대응보다 적임자를 골라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토록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태평양 건너에 머물러 서울 물정을 모르기 때문일까. 메르스 사태가 조직 구조보다는, 조직에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국민이나 구성원이 최대 역량을 발휘토록 유도하는 리더십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메르스 사태는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 내렸고, ‘우리가 하면 다르다’고 자부하던 삼성에 대한 신뢰에도 큰 흠집을 남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병상에 누운 이건희 회장이라면, 당신의 딸과 아들 대신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조철환ㆍ워싱턴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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