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우리말 톺아보기] 페어링

입력
2015.06.25 10:50
0 0

며칠 전 리모컨이 작동되지 않아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다. 그랬더니 리모컨 건전지 교체 후에 ‘페어링’을 하지 않아서 리모컨이 작동되지 않은 것이지 리모컨 고장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페어링’이 뭘 뜻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텔레비전을 처음 구입하거나 리모컨 배터리를 교체한 후 반드시 리모컨과 텔레비전을 서로 ‘페어링’해 주어야 리모컨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고 나서 ‘페어링’하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직원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페어링’이 뭘 뜻하는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영어 ‘pairing’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리모컨과 텔레비전이 서로 짝을 이루게 하는 일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었다.

서비스센터를 나오면서 이 전자회사는 왜 이런 말을 굳이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남녀노소, 지위의 높고 낮음, 지식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누구나 거의 매일 텔레비전을 본다. 그런데 ‘페어링’이라는 말을 듣고 어느 누가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페어링’은 ‘짝맞추기’ ‘짝하기’ ‘짝짓기’를 뜻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짝짓기’가 주로 동물의 암수 또는 서로 마음에 드는 상대끼리 짝을 이루는 일을 가리켜 이르는 데 쓰이므로, ‘짝맞추기’ ‘짝하기’ 정도로 바꿔 쓸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접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지식 부족 탓으로 여겨 크게 주눅 든다. 최근 들어 널리 쓰이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의 상당수는 외국어이다. 우리말도 아닌, 외국어가 더 이상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