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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빈민가 상인의 꼬여버린 운명... 이스탄불 밤거리처럼 아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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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빈민가 상인의 꼬여버린 운명... 이스탄불 밤거리처럼 아련한

입력
2017.11.09 16:4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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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는 신간 '내 마음의 낯섦'을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인생의 역작을 쓴 희귀한 작가가 됐다"(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찬사를 받았다. 민음사 제공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는 신간 '내 마음의 낯섦'을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인생의 역작을 쓴 희귀한 작가가 됐다"(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찬사를 받았다. 민음사 제공

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무크 지음ㆍ이난아 옮김

민음사 발행ㆍ652쪽ㆍ1만6,800원

자신의 모국어가 빚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와 동시대를 사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 오르한 파무크의 아홉 번째 신작을 읽으면 터키 독자들의 기쁨을 상상하게 된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담은 위대한 소설을 읽으며 그때 그 시절과 지금 여기를 반추하는 기쁨을.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때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을 설명할 때 나 자신을 설명한다”는 이 애도(愛道)주의자의 새 이야기 배경은 당연하게도 이스탄불. 작가는 동서양의 문화와 사상과 종교와 계급이 충돌하는 그곳의 반세기 도시화 과정을 하층민 남자의 일생을 통해 그린다.

20세기 중반 이스탄불은 서울처럼 돈을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넘치고, 시골 아나톨리아에 살던 우리의 주인공 메블루트와 그 아버지 카라타쉬도 1969년 상경해 이스탄불 외곽 무허가촌인 ‘게제콘두’에 자리 잡고 요구르트와 터키 전통 음료 ‘보자’가 담긴 통을 메고 골목을 돌아다닌다.

영화 ‘국제시장’의 터키 버전이라 생각하긴 이르다. 일단 가계도가 다분히 ‘구약성서’를 닮았으니까. 사촌 사이인 코르쿠트와 메블루트의 족보는 결혼으로 꼬였다. 코르쿠트의 아내 웨디하와 메블루트의 아내 라이하가 자매다. 코르쿠트의 결혼식에서 형수의 여동생 라이하를, 정확히 라이하의 눈을 보고 첫 눈에 반한 메블루트가 3년간 그녀에게 열렬한 구애 편지를 쓴다. 코르쿠트의 동생이자 메블루트의 동갑내기 사촌 쉴레이만이 사랑의 파수꾼을 자처해 편지를 전달한다. 홀아비 장인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줄 수 없는 메블루트는 라이하와 도망을 결심하고 우여곡절 끝에 둘만 남게 돼 그녀의 모습을 온전히 다시 볼 수 있게 됐을 때, 알게 된다. 그가 잊지 못한 첫 사랑의 눈은 라이하가 아니라 그녀의 동생 사미하의 눈이었음을. 그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메블루트는 라이하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사미하에게 퇴짜를 맞은 쉴레이만이 라이하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며(사미하를 맘에 둔 그가 일부러 웨디하 형수의 막내 동생 이름을 ‘라이하’라고 알려줬다) 부부의 삶은 혼란으로 빠져든다. 메블루트는 큰아버지 집안의 연줄로 식당 매니저로 일할 때도, 친구 페르하트와 보자 가게를 열 때에도, 심지어 두 딸을 결혼시킨 후에도 보자통을 메고 밤 거리를 헤맨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밤거리, 그 설명할 수 없는 낯섦에서만 마음이 평온해지기 때문에.

구약성서 속 야곱의 운명과 같은 삶을 살게 된 메블루트에게, 부인이 된 사미하는 말한다. 언니가 당신을 처음 본 건 웨디하의 결혼식이 아니라 그보다 6년 전, 당신이 중학교 3학년이던 시절 시골에 돌아왔을 때라고. 그때 언니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책 읽는 당신에게 이미 관심이 있었노라고.

게제콘두에 지은 빌딩 꼭대기에서 이스탄불을 내려다보며 메블루트는 40년간 보자통을 메고 거리를 헤맨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 ‘밤에 도시를 배회하는 건 자기 머릿속을 배회하는 느낌을 주었’노라고. 다시 보자통을 들고 거리를 나서며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라이하를 사랑했어.”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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