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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 등으로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민감한 정보’ 공개 주문에 기업은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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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 등으로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민감한 정보’ 공개 주문에 기업은 아우성

입력
2018.04.12 17:4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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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라인 작업환경 등

정부ㆍ법원, 최근 공개 명령 잇달아

“알 권리ㆍ국가기밀 균형 있게 봐야”

산업부 장관, 고용부와 입장 차이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단일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평택1라인. 삼성전자 제공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단일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평택1라인. 삼성전자 제공

최근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워 기업의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정부와 법원의 주문이 잇따르면서 기업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들은 행여 정부나 법원의 권위에 도전하는 거로 비춰질까 공개적인 비판은 자제하면서도 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걱정하는 분위기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유수 대기업들은 특히 최근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를 추진하고 나선 이후 벌어지는 갈등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민국 기술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관련 정보공개가 확정될 경우, 다른 첨단 산업에도 심각한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당사자인 삼성전자는 대외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면서도, 행정ㆍ법적 대응을 통해 정보 공개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 공정이 국가 핵심기술임을 인정해 달라는 확인을 신청했고, 30일엔 수원지방법원에 정보공개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일에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도 행정심판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고용부가 “해당 서류에 영업비밀 정보가 없다고 판단했다”지만, 반도체 전문가라면 특정 공정의 배치, 투입 재료 종류 등의 공개 정보를 통해 삼성이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우려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의 민감한 정보가 보호받지 못한다면 앞으로 기술 선도 분야의 연구개발(R&D) 등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정부나 법원은 ‘공개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지만, 과연 결정 과정에서 관련 전문가가 얼마나 참여했고, 객관적 검증을 거쳤는지 의문”이라고도 말했다.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유ㆍ화학업계도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2011년 ‘기름값 소동’이 여전히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한 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원가구조를 뜯어보겠다’며 정유사들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결국 별문제를 찾지 못한 채 기름값을 강제로 100원씩 인하해 큰 타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도 기름 출고가격을 매주 석유공사에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가격도 엄연히 영업전략이기 때문에 기업 활동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부도 고용부와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삼성전자의 국가 핵심기술 확인 요청에 대해 “피해자의 알 권리와 국가기밀 사이에서 균형 있게 봐야 한다”며 “이 사안이 국가기밀에 해당하는지 공공정보인지 16일 반도체전문위원회를 열어 전문가 위원들이 판정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부는 노동자의 안전과 국민의 알 권리 등을 고민하겠지만 산업부는 국가의 기밀사항을 고민해야 하는 부처”라며 “산업기술이 외국이나 경쟁업체에 유출될 가능성을 주의 깊게 보면서 고용부 장관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한쪽에선 공개를, 다른 쪽에선 보안을 강조하는 정부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얼마 전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가 중국에 공장을 지으려 하자 국가정보원 등이 나서 반대했었는데, 이번에는 최첨단 공정을 공개하라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다양한 의견이 맞선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잇단 정보공개 압박은 시장경제 원리와 기업 재산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이동통신사 원가공개 결정도 결국 혁신을 통해 원가를 낮춘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욕을 먹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혁신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려고 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반면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정보공개를 회피하는 행위가 오히려 기업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동욱 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 교수는 “삼성은 영업비밀을 내세워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이 보고서에 나온 화학물질 성분이나 사용량만으로 반도체 생산공정의 기술ㆍ노하우를 추정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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