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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통령께 일독을 권하는 편지 한 장

입력
2017.11.27 13: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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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물론 관계자들이 잘 준비하리라 믿지만, 더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7년(기원전 610년)조에 실린 편지 한 장을 꼭 읽고서 회담에 임해줬으면 한다.

당시 정(鄭)나라는 작은 나라였고 진(晉)나라는 큰 나라였다. 이때 패권국인 진나라는 제후들과 회동하면서 정나라 임금은 만나주지 않았다. 정나라가 또 다른 대국인 초(楚)나라에 붙어 두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다. 이에 정나라 대부인 자가(子家)가 진나라로 가서 진나라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전했다.

‘저희 임금(寡君)께서 자리에 오르신 지 3년째에 채(蔡)나라 후를 불러 함께 진(晉)나라 임금을 섬기자고 청했습니다. 그래서 그 해 9월 채나라 후가 저희 나라(敝邑)에 왔다가 조현(朝見)하기 위해 진나라로 갔으나 마침 그때 저희 나라에는 후선다(侯宣多)의 난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저희 임금께서는 채나라 후와 함께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11월에 후선다의 난리가 좀 가라앉은 다음 채나라 후를 뒤좇아 진나라로 가서 집사(執事ㆍ진나라 임금)께 조현했습니다. 14년 7월에는 저희 임금이 또 진(晉)나라에 조현해 진(陳)나라가 진(晉)나라를 섬기는 일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15년 5월 진나라 임금이 저희 나라에서 출발해 가서 진나라 임금께 조현했으며, 지난해 정월에는 촉지무(燭之武)가 태자 이를 데리고 가서 진나라에 조현했고 8월에는 저희 임금께서 또 가서 조현했습니다. 진(陳)나라와 채나라가 초나라와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도 진(晉)나라에 감히 두 마음을 품지 못하는 것도 저희 나라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나라 임금을 이처럼 섬긴 저희 나라가 어째서 죄를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비록 저희가 작은 나라이지만 진나라를 섬기는데 있어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성심성의를 다했는데도 지금 큰 나라에서는 “너희들이 섬기는 바가 우리의 뜻에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시니 저희 나라가 망하게 될지언정 이보다 더 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옛 사람의 말에 “머리가 어찌 될까 봐 두려워하고 꼬리가 어찌 될까봐 두려워한다면 몸에 두려워하지 않을 부분이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했고 또 “사슴이 죽을 때는 그늘진 곳을 가리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길 때에는 큰 나라가 덕(德)로 대해 주면 작은 나라는 사람의 도리(人)로 섬기고 다움으로 대해주지 않으면 마구 내달려 험한 곳을 달리느라 위급한데 어느 겨를에 (죽을 곳을) 택하고 가릴 수 있겠습니까?

(진나라가 요구하는) 명(命)이 끝이 없으니 진실로 저희 나라가 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장차 우리의 군대를 총동원해서라도 숙(儵) 땅에서 기다리겠으니 집사께서는 알아서 명을 내리십시오.

(이처럼)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강한 나라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어찌 작은 나라의 죄이겠습니까? 만약에 큰 나라(-진나라)가 작은 나라(-정나라)를 깊이 생각해주지 않으신다면 큰 나라의 명(命)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이에 진나라는 공삭(鞏朔)을 사신으로 보내 정나라와 화친을 맺게 했고 조천(趙穿)과 공서(公壻-임금의 사위) 지(池)를 정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즉 소국 정나라의 외교적 승리였다. 이 글에 대한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의 평이 정곡을 찌른다.

“정나라는 소국(小國)이지만 자가(子家)가 쓴 글이 곧았기[直] 때문에 진나라는 갑자기 두려워하며 임금의 사위까지 인질로 보냈다. 만약에 대국을 섬기기만 하는 내용으로 글을 썼다면 이렇게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역사책이기에 앞서 동맹과 적대의 외교 교과서이기도 하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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