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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북중 70년 인연은 가볍지 않다

입력
2017.11.0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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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전투지휘본부 찾은 시진핑. 신화연합뉴스
합동전투지휘본부 찾은 시진핑. 신화연합뉴스

 

‘중국도 이제 북한을 가시(thorn)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로 켜켜이 쌓였던 구원을 털고 관계개선에 합의한 직후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이 ‘대북 공조를 위해 반길 일이다’라는 논평을 내놓으며 덧붙인 말이다. 중국이 한국과 다시 가까워지면서 그 동안 북한을 자산으로 간주하며 대북 압박에 소극적이었던 자세를 내던지고, 사실상 ‘부채’나 다름없는 존재로 김정은 정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표현이다. 중국이 유엔 대북공조 참여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제재마저 나서주길 바라는 미국의 바람이 그대로 담겨있는 발언이기도 했다.

사실 한중 관계가 개선되는 시그널이 뚜렷해지는 것과 별개로 노어트 대변인의 말처럼 중국은 북한을 품어줄 수 없는 가시 돋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였다. 북한은 올해 들어 특히 미국과 경쟁하며 주요 2개국(G2)의 지위를 다져야 하는 중국의 발목을 여러 차례 붙잡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심기를 뒤집곤 했다. 5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포럼 개막식에 맞춰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하고, 9월엔 시 주석의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개막 연설을 앞두고 6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정도다. 오물을 뒤집어쓴 잔칫집 주인의 심정이었을 중국은 9월 말 유엔 안보리 결의 2375호 이행공고를 통해 중국에서 북한이 운영하는 기업들의 폐쇄 조치를 내리면서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 와중에 북중 고위급 교류의 장이었던 북한의 중국 선양 칠보산호텔이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중국은 북한과 오랜 친교의 상징마저 포기할 정도로 마음이 상했으리라.

북중 관계가 심상치 않음은 이른바 ‘축전(祝電) 외교’에서도 느껴졌다. 북한 노동당 창건일(10월10일)을 맞아 중국이 축전을 보냈지만 북한은 이를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선물을 받았으나 상자를 열어보지 않은 격이었다. 시 주석의 집권 2기 출범을 의미하는 19차 당대회 개막일(10월 18일) 북한이 중국 공산당에 보낸 축전은 수취인을 지정하지 않은 연서(戀書)와 다름 아니었다. 5년 전 18차 당대회 때 김정은이 보낸 축전은 당시 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의 이름을 명기했으며 길이도 800여자에 달했고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칭송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축전은 고작 200자였고 시 주석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비록 2일 중국 외교부가 당대회와 관련해 양측이 축전을 주고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일각에선 집권 2기에 들어간 시 주석이 북중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는 분석을 내놨지만 중국측의 ‘예의상 답전으로 감사를 표시했다’라는 표현에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베트남과 라오스에도 당대회 결과를 설명한 중국은 북한에 이를 위한 대표단을 보냈는지 확인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오쩌둥(毛澤東)을 수렁에서 건져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충칭(重慶) 장제스(蔣介石) 총통 관저에 오성홍기를 걸 수 있도록 결정적 도움을 준 은인이 다름아닌 김정은의 친조부 김일성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 같은 분위기가 실제 중국의 변화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김일성이 2차 국공내전 때 내준 혈로가 없었다면 시 주석의 공산당은 지금과 다른 역사를 가졌으리란 점을 인민대회당의 중국인들은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마오쩌둥은 ‘오성홍기에 조선열사들의 선혈이 배어 있다’는 유지를 남겼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 방중이 코앞으로 다가온 3일 정쩌광(鄭澤光) 중 외교부 부부장은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일관된 입장을 이어갈 것”이라 했고, 관영매체들은 미국의 매파들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의 기대처럼 북한을 ‘가시’로만 여긴다고 낙관할 수 없는 징후들은 8일 시작될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가까워질수록 뚜렷해질 것이다. 70년을 지탱한 인연을 쉽게 볼 일은 아니다.

양홍주 국제부장ㆍ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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