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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공예는 ‘가성비’ 논리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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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공예는 ‘가성비’ 논리가 불편하다

입력
2018.04.19 17:3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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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말로 흔히 “가성비가 갑이다”처럼 가격에 비해 쓸모가 큰 상품들을 일컫는데 주로 쓰인다. 가구를 만드는 목수 혹은 공예가로서의 나는 ‘가성비’라는 단어가 몹시 불편하다. 고도의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물건가격과 품질은 대개 균일하게 나타난다. 어느 기업도 투입된 비용을 넘어서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가성비라는 단어 역시 값을 지불할 때 예상했던 품질보다 낫다는 정도의 의미이지 저렴한 가격이면서도 완성도가 훌륭한 제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가성비라는 단어의 뒷편에는 기능주의, 취향 없음, 피난민 문화의 요소들이 고루 숨겨져 있다.

어이없을 정도의 시간과 노동을 통해 극상의 기물을 만들고자 하는 공예가에게 ‘가성비’라는 단어의 유행은 좌절에 가깝다. 가성비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공예라는 분야는 비도덕적인 낭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본의 리빙 브랜드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인 하라 켄야는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 설명할 때, 제품을 ‘~이 : 이것이 좋다’와 ‘~으로 : 이것으로 충분하다’로 구분한 후 무인양품은 ‘~으로’의 철학을 추구한다고 강조한다. 무인양품의 ‘~ 으로’ 철학은 ‘가성비‘의 논리와 일치한다.

하라 켄야의 설명처럼 ’무인양품‘에서 상품을 사는 고객들은 대를 이어 쓴다거나 취향의 분명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쉽게 기능적으로 소비하고 수명이 다하면 망설임 없이 버릴 수 있는 제품을 원하는 고객들이다. 하라 켄야의 디자인 철학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무인양품’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 시켰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윌리엄 모리스가 미술공예운동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꿈은 어쩌면 현대 디자이너들에 의해 이미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렴하고 질 좋은 물건을 대중화하고자 했던 의도들은 무인양품과 같은 회사들에 의해 이미 성취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가성비 좋은 제품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공예가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하라 켄야의 구분법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는다. 공예의 역할은 ‘이것으로 충분한’ 제품이 아니라 ‘이 물건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일품(一品)의 가치에 있다고 믿는다. 가장 대중적인 행위였던 공예가 귀족적인 행위로 변질된다는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공예 역시 시대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공예가가 ‘어떻게 하면 더 짧고 효율적인 공정으로, 보다 더 저렴하고 대중친화적인 물건을 만들까’라고 고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길고 더 많은 공력을 들여 어느 제품도 따라올 수 없는 분명한 취향을 지닌 물건을 만들까’를 고민하는 것이 공예에 대한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는 길이라고 본다. 공예가의 생존방법도 그러한 태도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역행하고 있다.

공예 관련 단체나 기업들은 공예가에게 인사동 거리의 매대에 놓인 관광상품과 같은 소위 ‘문화상품’을 만들라고 충고한다. 20만원을 넘지 않는 가격대, 하지만 수공예의 손맛과 전통의 이미지, 현대의 디자인이 함께 담긴 제품을 요구한다. 판매가가 하루 일당도 되지 않는 가격의 제품에 대기업에게도 힘에 부칠 덕목들을 요구하는 것이다. 당장의 판로가 보이지 않는 공예가들은 공방에 박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고자 시간과 노동을 소모하다 상한 몸으로 공예계를 떠난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한국공예의 빛나는 전통과 장인정신이 사라지고 조잡한 공예품과 근기가 약한 공예가들 뿐이라는 비난이 남겨진다.

현대 공예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시스템과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공예가들이 만들어낸 비틀어진 현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김윤관 목가구공방 대표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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