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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치지 않았다고… 강간을 축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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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치지 않았다고… 강간을 축소하는 사회

입력
2016.11.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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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학자 조디 래피얼은 강간이란 단어를 부정하고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지난 수십 년간 진행돼 왔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법학자 조디 래피얼은 강간이란 단어를 부정하고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지난 수십 년간 진행돼 왔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강간은 강간이다

조디 래피얼 지음ㆍ최다인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340쪽 ㆍ1만5,000원

“제가 몸부림치며 저항하지 않았더라도 강간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일이 있었던 뒤로 기분이 예전 같지 않아요. 저는 피해자인가요?”

2009년 미국의 칼럼니스트 에이미 디킨슨에게 한 독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강간인지 아닌지 조언해달라고 요청했다. 여학생인 그는 사교클럽 파티에 참석했고 술에 취했으나 섹스를 원하지는 않았으며 남학생의 방에 따라가기 전에 그 점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건 강간일까 아닐까. 무수한 설왕설래 뒤에도 이 사건이 강간인지 아닌지 확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간이다 혹은 강간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가 내세우는 근거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강간을 판단하고 있을까.

미국의 법학박사이자 여성 폭력 사건 전담 변호사 조디 래피얼의 ‘강간은 강간이다’는 강간을 강간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사회ㆍ문화적 요소들을 과학적 통계를 통해 들춰낸 책이다. 미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강간에 대한 논쟁은, 강간을 가장 좁은 의미로 축소시키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하려는 사람들 간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피해자의 책임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강간 부정론자들이 강간을 단순히 ‘나쁜 섹스’의 범주로 편입시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피해자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왜 늦은 시간에 외출했는가, 뭘 믿고 술을 그렇게 마셨는가, 왜 그 남자를 따라갔는가, 왜 ‘최선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는가, 무슨 저의로 이제 와서 고발하는가.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강간은 없다라는 것이다.

강간 부정론자들 중에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남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적 해방을 페미니즘의 최우선 순위로 꼽는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여성이 ‘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강간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의적이지 않은 성관계, 그 와중에서 일어나는 언쟁, 압박, 유도. 이런 “사소한 일”까지 본격적인 성폭행으로 규정하는 것은 여성의 성적 자유에 해를 끼친다는 소리다.

이들의 주장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강간이라는 단어를 지우는 데 강력한 역할을 했다. 저자는 강간 기사 아래 달린 댓글을 인용하며 강간 부정론이 어떻게 대중의 의식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지를 지적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자가 섹스를 하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또는 섹스를 즐기지 못했으면 강간이라는 믿음을 퍼뜨리려 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남자의 인생을 망칠 근거가 될 수도 없다.”

이는 피해자들의 머릿속에서도 강간이란 단어를 지우는 결과로 이어진다. 데이트 강간 피해자인 라일리의 진술은 피해자들이 어떤 식으로 자기 검열의 고통을 겪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라일리는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루크라는 남성의 집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그로부터 구강 성교를 강요 당했다.

“항상 다시 생각하게 돼요. 루크가 정말 자기 얼굴을 억지로 내 성기에 밀어붙였던 걸까, 아니면 내가 루크를 막지 않고 내버려뒀던 걸까? (…)신체적으로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했기에 없었던 일로 치거나 일어났던 일에 핑계를 갖다 붙여서 상황을 만회해보려고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했어야 할 행동이나 말을 하지 못했으니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과 수치심이 점점 부풀어 올라요.”

강간을 지우려는 사람들의 범주에는 가해자뿐 아니라 실상 피해자까지 포함돼 있는 셈이다. 이것이 강간을 강간이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다. 저자는 개별 사건에 대해 일일이 강간 여부를 감별하지 않는다. 그의 질문은 하나다. 강간을 인정할 준비가 돼 있는가. 이 질문은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제3자들을 겨냥한다. 다른 폭력들과 마찬가지로 강간 역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의 풍토에 깊이 뿌리 박힌 범죄이기 때문이다.

“사랑 싸움” “자빠뜨린다” “몹쓸 짓”과 같은 언어를 위시해 유서 깊고 공고한 강간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강간을 강간이라고 말할 준비가 돼 있는가. 강간과의 전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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