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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켈러는 알면서… 시청각중복장애 존재는 왜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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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켈러는 알면서… 시청각중복장애 존재는 왜 모르시나요”

입력
2016.08.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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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 개념 정립조차 안돼

규모 파악도 못하는 실정

미국은 정부가 맞춤형 복지 지원

보완교육 시설도 주마다 산재

시청각중복장애청년 등으로 이뤄진 ‘달팽이 날다’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공원에서 북부캘리포니아 데프블라인드협회(NCADB)소속 장애인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시청각중복장애청년 등으로 이뤄진 ‘달팽이 날다’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공원에서 북부캘리포니아 데프블라인드협회(NCADB)소속 장애인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우리나라에선 시청각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등학생 때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시각과 청각 1급 장애를 갖게 된 박관찬(29)씨는 자신과 같은 시청각중복장애인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게 꿈이다. 법학을 전공한 뒤 석사학위까지 마친 그는 당장 시청각중복장애인 청년협회를 만들고 싶어 한다. 국내에선 시청각중복장애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이들에 대한 변변한 지원 단체 하나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많은 사람들이 시청각중복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사업에 헌신한 헬렌켈러는 알고 있어도 주변의 또 다른 헬렌켈러들에게는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런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장애인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미국을 찾았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관하는 ‘장애청년드림팀’ 프로그램을 통해 같은 장애를 가진 대학생 조원석(23), 안근형(21)씨와 팀(달팽이 날다)을 꾸려 지난 18일부터 열흘 간 미국에 머물면서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선진 복지시스템을 둘러 봤다.

미국은 일찌감치 시청각중복장애인 개념과 이들이 받을 의무교육 등을 법으로 정해 놓았다. 관련 법령에 근거해 1969년 설립된 헬렌켈러 센터는 정부 주도로 미국 10개 지역에 지부를 두고 16세 이상 시청각중복장애인 복지서비스를 맞춤 지원하고 있다. 점자연구소 등 장애 특성에 맞는 보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비영리 민간시설도 주마다 산재해 있다.

19일 로스앤젤레스 점자연구소에서 만난 담당자는 “장애인 각자가 집에서 교육을 받는데 불편함이 없게끔 전국 각 지사가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직업재활 상담가와 정신보건 전문가 등을 고용해 장애인들의 근로를 보조하는 일도 주정부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에는 시청각중복장애인 규모조차 파악이 안돼 있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인정하는 15개 장애 종류 중 시청각중복장애는 포함되지 않은 탓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등록장애인(당시 약 200만명)의 0.2%인 4,000~5,000명으로 추산했으나 이마저도 10년 전 통계다. 인권위는 당시 “한국은 미국과 달리 ‘시청각장애(Deaf-Blind)’를 정의하는 법 조항이 없어 해당 장애인들이 차별받기 쉽다”며 중복장애 특성이 반영된 교육ㆍ지원의 필요성을 지적했지만 별다른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은 정부뿐 아니라 시청각중복장애인들도 자발적으로 지역별 협회를 구성해 자활에 힘쓰고 있다. 24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공원 한 켠에 마련된 50평 남짓 실내 공간에선 북부캘리포니아 데프블라인드협회(NCADB) 소속 시청각중복장애인과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10여명이 모여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NCADB 부회장인 브랜다(49)씨는 “정부 도움 없이 운영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올해로 설립 53주년을 맞을 만큼 회원들의 호응이 좋아 시청각중복장애들의 사회 적응에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장애인들이 함께 협회를 이끌면서 운영의 묘를 살린 것도 성공 비결이다. 박씨는 “국가적 지원 외에 특수교육을 받는 장애인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지역사회가 나서 먼저 이들을 보듬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탐방에 동행한 김종인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장은 “한국도 장애인 복지정책 규모가 과거에 비해 커지긴 했지만 시청각중복장애인처럼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정부가 제대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ㆍ샌프란시스코=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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