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망원동에 있는 국내 첫 성소수자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을 찾았습니다. 사무실을 찾자 처음 눈에 띈 것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장실용 패드였습니다. 패드의 주인은 바로 뒷 다리를 쓰지 못하는 후지마비 고양이 ‘비욘드’(2살 추정)였습니다.
비욘드는 혼자는 배뇨를 하지 못하고 5시간에 한번씩 사람이 방광을 직접 눌러주는 압박배뇨를 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욘드는 “우리의 마스코트”라는 재단 관계자의 자랑이 이어졌습니다. 재단방문의 목적이 이신영 이사장의 인터뷰였기에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마친 후 온라인에서 비욘드를 검색해보니 이미 동화책 주인공이 된 나름 유명 고양이더군요.
비욘드는 2013년 여름 어린이 공부방 한 교사가 퇴근하던 길에 발견됐습니다. 공부방에서 1주일간 임시보호를 받던 중 우연히 이곳을 방문한 류은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의 눈에 띄었죠. 류 이사는 24시간 사람이 늘 보살펴야 하는 비욘드를 입양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공동육아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재단 관계자들과 상의를 거쳐 재단의 고양이로 입양했다고 합니다.
비욘드는 매일 류 이사와 함께 재단으로 출퇴근을 합니다. 재단의 마스코트로서 활동하면서 15만원의 월급도 받습니다. 하지만 사료값에 병원비에 이미 가불을 많이 한 상태라고 하네요. 비욘드는 장애가 있지만 성격도 밝고 장난도 잘 치고 고양이답지 않게 사람에게도 잘 안긴다고 합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사무실 분위기를 밝고 따뜻하게 바꿔주기 때문에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하고요. 방문자들도 비욘드를 보고 좋아하는 것은 물론 비욘드에게 필요한 용품도 보내주고, 비욘드를 보러 일부러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비욘드의 일거수일투족(?)을 업데이트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바로가기)까지 생겨났고, 비욘드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 ‘연두 고양이’까지 발간됐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키우는 기분”이라는 게 류 이사의 설명입니다.
비욘드 이름은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비온뒤와 어감이 비슷하면서 또 영문명칭인 비욘드레인보우파운데이션(Beyond rainbow foundation)에서 따온 것인데, ‘장애를 넘어라’라는 뜻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길고양이 출신, 그것도 장애가 있는 고양이 비욘드와 성적소수자들의 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사람들의 편견의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들을 지지하거나 좋아하는 것까진 아니라도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회에서 이들이 장애를 넘고 편견을 넘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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