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재현 기자

등록 : 2018.04.16 04:40
수정 : 2018.04.16 09:22

정치팬덤, 현실정치 개입… ‘제2 드루킹’ 수두룩

등록 : 2018.04.16 04:40
수정 : 2018.04.16 09:22

기사 공유 통한 ‘좌표 찍기’ 방식서

매크로 활용 ‘기술적 조작’ 일탈도

與인사 ‘김경수 의혹’ 기사 링크에

수백 건 리트윗 “가짜뉴스다” 도배

보수 커뮤니티 올린 ‘같은 기사’엔

여당 비난 댓글 1만4000개 추천

지지층 내에서 의견 교환만 해도

수만명 여론 움직이는 착시 효과

중간 없는 양 극단 목소리만 남겨

정치팬덤의 여론 개입은 조작과는 다르나, 조직적이고 일사 분란하게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포털 기사 링크를 공유하고 원하는 쪽의 댓글에 추천, 베스트 댓글을 만들어 특정 정치인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 댓글 조작 사건의 주범인 더불어민주당 당원 ‘드루킹’ 김모(48)씨가 김경수 의원에게 대선 이후 무리한 인사를 요구할 정도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온라인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정치팬덤의 막강한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다.

정치팬덤으로 통칭되는 극렬 온라인 지지층은 대부분 특정 포털 기사 링크를 수천에서 수만 명의 지지자들이 공유한 뒤, 유리한 여론을 베스트 댓글로 만드는 일명 ‘좌표 찍기’ 방식으로 현실 여론에 개입한다.

정치팬덤 활동가들은 이 같은 행위가 여론조작이 아니라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 여론형성 과정에서의 합법적인 개입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드루킹 사례처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등 기술적인 범죄로 여론을 형성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드루킹의 사례는 여론을 인위적으로 바꾼 여론 조작이지만, 정치팬덤의 경우에는 자발적인 개인들이 모여 형성한 여론을 조직화된 형태로 전파시키는 여론 개입에 가깝다. 하지만 일사 불란하게 움직이며 상대 진영을 초토화시키는 정치팬덤의 집단 공격 성향이 드루킹의 일탈 행위가 자라나는 풍토가 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팬덤의 부작용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이전부터 있어 왔다. 지난 2월 6일에는 상세한 댓글 조작 지침을 담은 ‘모니터 요원 매뉴얼’ 문서가 우연히 한 네티즌에 의해 발견돼 논란이 됐다. 여권 지지자 사이에서는 “드루킹이 한 짓”이라며 “이제 기사 좌표 올리지 마세요”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돌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 이 같은 여론 개입 행위는 진보ㆍ보수를 가리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 진보진영 온라인 지지층들은 주로 트위터를 이용해 여론 작업에 나서는 게 특징이다. 기사 링크와 의견을 최대 수만명에 달하는 자신의 팔로워(친구)들에게 일괄 발송하는 방식이다. 한 예로 약 1만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한 여권 지지자가 지난 14일 김경수 의원과 댓글공작팀이 비밀문자를 주고받았다는 기사 링크와 해당 기사는 “가짜뉴스”라는 비난 댓글을 소개하면서 “여기 가서 따봉(추천) 좀”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약 4,000명의 팔로워를 가진 다른 지지자가 리트윗과 함께 “임무완료”라는 댓글을 남겼고, 이 외 수백 건의 리트윗이 더 일어났다. 그 결과 해당 기사의 “가짜뉴스”라는 비난 댓글은 최대 1만6,000개의 추천을 받았고, 추천수 상위 100개 이상이 여권 지지층의 의견으로 도배됐다.

야권에서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보수 성향의 대형 커뮤니티 웹사이트를 통해 이 같은 여론몰이가 일어난다. 한 일베 이용자는 지난 13일 ‘댓글 조작 네티즌이 민주당원’이라는 기사 링크를 올려 지지를 요청했다. 이 글은 589개의 추천을 받아 금세 베스트 게시판에 올랐고, 해당 기사에서는 민주당과 여권 지지층 비난 댓글이 약 1만4,000개 추천을 받았다. 일베의 동시접속자가 평균 2만~3만명 수준이라 어떤 식으로든 여론전파력이 높은 베스트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여론 개입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인 정치팬덤이 있기에 가능하다. 지지층 내에서만 의견 교환 및 실행을 해도, 현실의 수만명의 여론이 동시에 움직이는 착시 효과를 낼 수 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 온라인 팬클럽의 규모는 ‘젠틀재인’ 5만9,133명, ‘문팬’ 2만3,611명 등 최대 10만명에 육박한다. 이들이 올린 글은 지금까지 57만개가 넘고, 3월 한 달 페이지뷰(조회수)는 56만회에 달한다. 카카오의 카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상시 활동자는 1만명을 넘는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지지자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성향의 팬덤도 마찬가지다. 웹사이트 분석업체 인포머에 따르면 13일 일베의 하루 방문자 수는 43만7,000명, 페이지뷰는 699만회에 이른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정치팬덤들은 이미 여론을 넘어서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수준”이라며 “이들이 온라인 기사를 전쟁터 삼아 중간지대 없는 양 극단의 목소리만 남겨놓는다”고 지적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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