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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치료하려면… 병원 전전 ‘재활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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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치료하려면… 병원 전전 ‘재활 난민’

입력
2016.05.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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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병원 한곳, 나머지도 소규모

대기자 많아 입원기간 제한

매달 병원 옮겨가며 치료 이어가

소아청소년 장애아 30만명 추산

“저수가 구조 개선해 병원 늘려야”

지적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민호(5ㆍ가명)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푸르메재단넥슨어린이병원에서 전지혜 미술치료사에게 양 손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미술치료를 받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적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민호(5ㆍ가명)가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푸르메재단넥슨어린이병원에서 전지혜 미술치료사에게 양 손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미술치료를 받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경남 통영에 사는 주부 이미연(37ㆍ가명)씨는 돌이 돼도 혼자 앉지 못하던 아들 민호(5ㆍ가명)를 2013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장애를 최소화하려면 재활치료가 시급했지만 이 병원에는 3주만 입원할 수 있었다. 다른 병원들을 수소문했으나 어린이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이 전국에 거의 없었고, 입원하려면 최소 6개월~1년은 기다려야 했다. 오래 기다려 겨우 입원해도 3주~3개월 후에는 퇴원을 해야 했다. 어린이 재활치료 입원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병원들이 입원 기간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4년간 서울의 3개 병원을 번갈아 가며 민호를 몇 개월씩 입원시켜 재활 치료하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지난 3월에는 급기야 남편만 통영에 두고 첫째 딸(9)과 민호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모든 장애는 성장과 발달이 활발한 어린 시기에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장애 정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민호를 집중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현재 서울의 4개 병원에서 민호에게 언어ㆍ심리ㆍ미술ㆍ음악ㆍ물리치료를 시키고 있다. 치료 비용만 월 300만원이 든다. 서울과 통영 양쪽의 집세, 생활비까지 합치면 한 달 지출은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민호의 재활을 위한 타향살이는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이씨는 “장애아는 평생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사는 곳 근처에는 시설조차 없다”며 “의료비 부담 완화도 필요하지만 우선은 어린이 재활병원이 전국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장애아가 있는 가족들은 거의 대부분 민호네 가족처럼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2~3개월씩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장애아는 30만명으로 추산되지만, 어린이 재활을 위한 병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재활을 위해 떠돈다고 해서 ‘재활 난민’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재활치료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병원은 시민ㆍ기업ㆍ지자체 등의 기부로 지난달 서울 상암동에서 개원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 유일하다. 서울 등 주요 대도시에 있는 대학병원이나 권역재활병원에도 일부 어린이 재활병동이 있지만 병상 수가 매우 적고, 성인 중심으로 운영된다. 어린이병원 중 장애아동을 위한 진료과목을 갖춘 곳 역시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에 어린이재활병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경기 분당에 90병상 규모의 보바스어린이병원이 개원했지만, 적자 누적으로 2014년 29병상 규모(의원급)로 축소됐다. 2008년 경기 부천에서 100병상 규모로 문을 연 꾸러기병원 역시 경영난으로 성인 위주의 재활요양병원으로 바뀌었다. 이 같은 적자는 원가보다도 낮은 소아 재활 수가(진료비) 때문이다. 어린이 재활치료는 도구나 기기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성인 재활과는 달리 치료사 1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담해야 하고 진료 및 치료의 난이도도 높아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수가는 오히려 성인 재활치료보다도 낮아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달 문을 연 푸르메어린이병원 역시 적자를 예상하고 개원했다. 소아재활은 상대적으로 환자수가 많지 않은 분야이다 보니 수가 역시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국은 전혀 다르다. 푸르메어린이병원에 따르면 일본은 어린이재활전문병원이 202개, 독일은 140개, 미국 40개에 달한다. 특히 일본은 1960년대 초반부터 장애 아동에게 공공의료와 사회복지 혜택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며 민관이 함께 병원을 설립해 왔다.

전문가들은 저수가 구조 개선과 예산 투입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김명옥 인하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소아 재활은 낮은 수가 때문에 수익이 나지 않아 민간병원들이 외면하고 있고, 공공의료 성격이 강한 권역재활센터 역시 성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수가 현실화와 함께 정부가 소도시에도 지역재활병원을 운영하고, 민간 어린이재활병원을 제도적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소아 부문에 대한 수가 인상을 검토 중인데 소아 재활 분야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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