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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기업 전용기들 '불법'으로 날아다니는 사연

입력
2014.10.2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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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들이 항공법을 어기고 ‘불법’으로 전용기(자가용 항공기)를 운영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를 관리ㆍ감독 해야 하는 국토교통부는 최근까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뒤늦게 이들 회사가 법을 어긴 것을 확인했습니다.

21일 국토교통부와 재계에 따르면, 항공법 제6조 ‘항공의 등록의 제한’에는 ‘외국인이 주식이나 지분의 2분의 1 이상을 소유하거나 그 사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법인이 소유하거나 임차한 항공기는 등록할 수 없다’고 돼 있고, 제 114조 ‘면허의 결격 사유 등’에는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국내항공운송사업 또는 국제항공운송사업의 면허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나와 있는데요. 이어 제129조 ‘면허의 취소’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 경우 그 면허를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의 기간의 정해 그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돼 있고, 마지막으로 제 183조 ‘과태료’에는 국토부 장관은 이런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말소등록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200만원을 물릴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삼성 HL 7759 전용기.
삼성 HL 7759 전용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외국인이 주식이나 지분의 2분의 1 이상을 소유하거나’하는 부분입니다. 현재 국내 주요 그룹 사 중 여객기나 헬기 등 전용기를 운영 중인 곳은 삼성, 현대차, LG, SK, 한화, 포스코 등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전용기 소유 지분을 여러 계열사들이 나눠서 가지고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전용기 지분은 삼성전자가 95%, 삼성테크윈이 5%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이 전용기를 이용할 경우 배임 등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외 비즈니스가 많아지고 전용기를 쓸 일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공동 소유, 공동 이용이라는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대기업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법 조항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외국인 지분 50% 룰’ 입니다. 현재 전용기를 보유한 국내 주요 대기업 계열사 중 외국인이 지분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는 곳은 삼성전자와 포스코입니다.

법조항상 이들 기업은 전용기를 등록할 수 없고, 등록했다면 국토부의 면허 취소와 과태료 등의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법대로 정부가 갑자기 면허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면 비즈니스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며, 설사 전용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팔기로 했더라도 제 가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만큼 손해가 적지 않습니다.

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그룹이 현재 운행 중인 전용기 헬기 2대를 처분하고 새 헬기 도입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대로라면 새 전용기는 등록도 제대로 하지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죠. 삼성 측도 뒤늦게 이런 상황을 파악한 후 법률 자문 등 대처 방안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재계 관계자는 “법과 어긋난 상황임에 틀림없다”고 시인하면서도 “법 규칙을 현실에 맞게 미리 정비했으면 좋았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외국인 투자가 늘고 실제 전용기 지분을 가지고 있는 다른 대기업 계열사들도 외국인 소유 지분이 적게는 10%대부터 많게는 40%대까지 차지하고 있습니다.

posco의 전용헬기 HL 9291.
posco의 전용헬기 HL 9291.

국토부 관계자는 외국인 지분 50%룰을 어긴 기업에 대해 “어떤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는지 법률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의 대답은 이 법이 무려 45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과도 관련이 깊어 보였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외국 자본으로부터 국내 항공사를 보호 하기 위해 법 조항을 만들었는데 이런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고 솔직히 법의 문제점을 인정했습니다. 법 제정 당시 국내 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50% 넘는 상황을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규정을 어긴 회사가 “삼성전자와 포스코뿐”이라는 국토부 관계자의 목소리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이 담긴 듯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지 고쳐야 한다면 어떻게 고칠지 법률 자문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그런데 법을 개정 하려면 명분이나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전용기가 분명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몇몇 대기업을 위해 법을 바꾼다는 것이 자칫 ‘특혜’를 주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와 관련해 국토부가 대기업들에 대해 즉시 제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시민사회단체(NGO) 측은 ‘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물론 사업 상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 참에 대기업의 전용기 사용 전반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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