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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등 애연가 3인의 '흡연 결의'

입력
2014.09.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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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셋이 나섰는데 크게 뭐라고들 하지는 않을 거야.”

뽀얀 연기 세 줄기가 화답합니다. 최경환(사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결단의 순간에 사이 좋게 담배를 나눠 피웠다고 합니다.

최 부총리에 따르면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그렇게 담뱃값 인상 등을 담은 금연 정책을 ‘흡연 결의’했습니다. 10년 만에, 그것도 대폭 인상(갑당 2,000원)이니 흡연자들이 선봉에 선 거센 저항이 두렵지만 자신들도 흡연자인 만큼, 적어도 “담배도 안 피우면서”라는 비난은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거죠.

세 사람은 자타공인 골초라는 게 최 부총리의 귀띔입니다. 실제 최 부총리는 술자리에서 10분마다 담배를 한 대씩 필 정도로 애연가입니다. 담뱃값 인상 방안을 발표한 뒤부터는 흡연 횟수가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정부 내 애연가 3인이 주도한 담뱃값 인상의 논리 전개는 이렇습니다. “흡연자 여러분, 저희도 흡연자입니다. 인상되면 저희도 부담이 되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최 부총리는 이후 기회가 날 때마다 “담뱃값 인상은 세수 확충 목적이 아닌 국민 건강 보호”라고 거듭 역설하고 있습니다.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부족한 세금을 메우려는 ‘꼼수’가 아니라, 금연을 유도해 국민 모두가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는 것이죠.

정부의 바람을 에누리 없이 받아들이더라도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토록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인상한다면, 해당 대책을 주도한 분들이 먼저 금연 결의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자신들의 건강은 내팽개치면서 국민의 건강만 바란다면 너무 미안해서 말이죠. 살펴보니 최 부총리는 당장 담배를 끊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담뱃값 인상이 모든 이들에게 같은 무게의 부담으로 다가오는 건 아닙니다. 연봉대비 비중을 감안하면 고위 공무원보다 서민들의 부담이 훨씬 큰 게 사실이죠. 1,000만원 버는 사람에게 2,000원은 0.002%에 불과하지만 100만원 버는 사람에겐 열 배의 부담이 더 생기니까요. 최 부총리는 “그 말도 맞지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흡연을 막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아마도 최 부총리는 담뱃값 인상을 그만큼 사심 없이 추진했다는 걸 일화를 통해 알리고 싶었을 겁니다. 담뱃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싼 것도,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세종 공무원들의 분위기는 엇갈립니다. “이번에 끊어볼까”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못 봤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세수를 메우려면 끊을 수 없다”는 논리가 대세(주로 기재부의 공무원)인 것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일반 국민은 담배를 끊어야 하고, 세수 확충을 위해 공무원들은 담배를 계속 피워야 하는 상황, 참 아이러니합니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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