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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겨우 걸음마 뗀 포괄수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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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겨우 걸음마 뗀 포괄수가제

입력
2012.06.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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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맹장수술, 백내장수술 등 상대적으로 변이가 적은 7개 질환군에서 포괄수가제가 의무 적용된다. 단, 100병상 미만의 소규모 병ㆍ의원에 제한된다.

포괄수가제란 질환별로 중증도별로 비급여 비용까지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포함시켜 일정한 가격을 미리 정해 놓는 방식이다. 이미 우리나라도 다수의 의원과 많은 병원에서 자율참여 형식으로 적용하고 있다. 나머지 병의원은 입원료 얼마, 진찰료 얼마, 검사료 얼마 등과 같이 따로따로 계산해서 가격을 정하는 '행위별수가제'를 쓰고 있었다.

포괄수가제로의 전환은 세계적인 대세다. 미국에서 출발해서 전 유럽국가와 대부분의 선진각국이 이미 포괄수가제로 전환했다. 우리 주변의 일본과 대만도 마찬가지다.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건보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서비스 수입에 의존하는 구도는 의료기관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급여서비스를 통해서 의료기관의 수익이 보장되고 환자들도 비급여서비스의 과잉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월급 의사들도 병원의 수익을 의식해서 고가 검사를 처방하는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처럼 포괄수가제 도입은 지불제도의 개혁을 통해 건강보험의 판을 새로 짜는 작업이지만, 포괄수가제가 의도하는 효과를 보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포괄되는 질환-처치군이 적절하게 분류돼 있어야 한다. 너무 세분화되면 효율적인 관리가 어렵고 상향코딩(의료현장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수가가 높은 쪽으로 분류하는 것)의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너무 분류개수가 적으면 비용의 편차가 크게 되어 지불정확성이 떨어진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500개 이상 2,000개 미만의 분류개수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의료현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서 '임상적으로 관련이 있고 비용소모가 비슷하게'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동시에 신의료기술을 적절히 포괄수가제에 반영하기 위한 기전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포괄수가가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을 보전하고 의료기관의 적정 수익을 보장하는 선에서 결정돼야 한다. 너무 낮으면 병ㆍ의원의 운영이 안 될 것이고, 너무 높으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인건비, 재료비, 관리비 등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의료기관 경영의 투명성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투명성은 의료기관의 회계가 원칙에 맞게 작성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이 건강보험이라는 공공부문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포괄수가제가 효율성을 높이고 의료의 질 평가에 연결될 수 있는 것은 투명성 제고를 통해서다. 샘플 의료기관의 회계자료가 주기적으로 보고되고 수가에 반영되는 기전이 마련돼야 한다.

셋째, 일단 포괄수가제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질환군에 대해선 이를 전체 의료기관에 동시에 적용하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의료기관이 임의로 선택하게 되면, 비용이 낮은 의료기관만 포괄수가제에 참여하고 비용이 높은 의료기관은 행위별수가제에 남게 된다.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다. 현재 대형병원(상급종합병원) 44개 중에 포괄수가제를 선택한 곳이 한 곳도 없고 의원은 대부분 포괄수가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7월의 확대는 시작에 불과하다. 내년 7월로 약속되어 있는 전체 의료기관으로의 확대 후에야 비로소 포괄수가제가 의도한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넷째, 포괄수가제 적용 질환을 확대해야 한다. 모든 의료서비스를 포괄수가제로 지불하는 국가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현재 적용하고 있는 7개 질환군은 너무 적다. 포괄수가제를 채택하면서 이렇게 극소수 질환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국가는 찾기 힘들다. 적용 가능한 전체 질환에 대한 소위 '신포괄수가제'가 일부 공립병원에서 시범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상이한 포괄수가방식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해 적용질환의 확대를 추진하는 것도 수 년 안에 이뤄야 할 과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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