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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쿠에카 솔라(3.8)

입력
2018.03.0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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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인들의 구애의 2인 포크댄스 쿠에카가 1978년 오늘 홀로 추는 저항의 '쿠에카 솔라'로 거듭났다. vcchile.org
남미인들의 구애의 2인 포크댄스 쿠에카가 1978년 오늘 홀로 추는 저항의 '쿠에카 솔라'로 거듭났다. vcchile.org

‘쿠에카(Cueca)’는 경쾌한 기타 반주에 맞춰 남녀가 손수건을 흔들며 추는 남미 민속춤이다. 숙련해야 할 만한 어려운 동작이 없어 생일 잔치나 결혼식 피로연 등 흥이 나는 자리면 누구나 자유롭게 추곤 하는 말 그대로 대중적 포크 댄스로, 볼리비아 페루 아르헨티나 칠레인들이 특히 즐긴다. 주제는 구애. 남성이 여성 주위를 돌며 정성스러운 구애의 동작을 반복하면 처음엔 삼가듯 경계하던 여성의 춤사위도 조금씩 대담해지며 남성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해피엔딩의 서사를 담고 있다. 수탉이 암탉에게 구애하는 양상을 형상화한 것이라 알려져 있다.

어느 문화권에나 있을 법한 형식과 내용의 ‘쿠에카’가 특별해진 것은 1978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칠레의 한 민속무용단이 선뵌 ‘쿠에카 솔라(Cueca Sola)’, 즉 홀로 추는 쿠에카 때문이었다.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 댄서들은 남자 없이 각자 홀로 그 빠르고 신나는 선율에 맞춰 쿠에카를 추었다. 그들의 목이나 드레스 한 켠에는 그리워하는 이의 사진이 매달려 있었다.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은 16년간 장기 집권하며 학살과 납치, 투옥, 고문으로 정치적 반대자들을 억압했다. 살해ㆍ실종된 이들만 공식 집계로 3,000여 명, 실제로는 10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회 시위는커녕 반정부 유인물 한 장 소지하다 들켜도 비밀경찰에 연행되고 남은 친지는 그의 생사와 소재조차 확인할 길이 없던 시절이었다. 갈망으로 떨렸을 댄서의 눈빛은 처연한 슬픔으로 젖기 일쑤였고, 아무래도 절제됐을 손수건의 나부낌은 억눌린 분노를 대변했다. 여성들의 저 춤은 살인적 인권 현실에 대한 저항과 강탈 당한 연인 혹은 자녀를 향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불끈 힘준 주먹보다 강렬한 호소력을 발휘하며 남미 전역과 세계로 퍼져나갔다.

음악ㆍ노래를 통한 남미 저항운동의 전통은 ‘쿠에카 솔라’의 춤으로도, 그렇게 우람해졌다. “왜 이 여성들은 혼자 춤을 추는지, 왜 그들의 눈빛이 슬프고 왜 군인들이 지켜서 있고, 그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는지?”로 시작되는 ‘스팅’의 노래 ‘They Dance Alone’이 발표된 것은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지기 2년 전인 1987년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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