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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알파고 비례공천’, 알파고가 비웃는다

입력
2016.03.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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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3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 당이 발표한 비례대표 공천자 명단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약속이나 한 듯이 비례대표 1번에 여성 이공계인을 배치했다. 여야의 이런 공천을 두고 ‘알파고 공천’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 여파가 각 당의 비례대표 공천자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인간과 기계의 다섯 차례 대국이 단순한 바둑경기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를 돌아보며 새로이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아니 좋을쏘냐.

그렇다면 여야 주요 3당은 알파고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을까. 국민의당, 그리고 당의 8할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안철수 의원은 오래 전부터 ‘새 정치’를 말해왔다. 하지만 ‘새 정치’가 과연 무엇인지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어서 사람 대신 국회로 보내겠다고 했으면 더 큰 호응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도로의 우회전에 목을 맨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런다고 유권자들이 표를 더 줄 것인지, 보수언론에서 오냐오냐 하며 곱게 받아들이기만 할 것인지 나는 궁금하다. 이런 의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얼마나 과학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중도를 위한 이념은 없다는 조지 레이코프 같은 사람의 주장을, 정치적 ‘감’이 아니라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반박할 수 있을까. 알파고는 인공신경망으로 빅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승률이 높은 착점을 찾는다. 중도로의 전환이 승률을 높인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계산은 대체 무슨 근거로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스스로의 정체성 변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정당이 알파고 시대를 대비할 수 있을까.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가장 심각해 보인다. 게임을 범죄시하는 풍토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정부는 게임을 질병유발물질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게임광이었던 하사비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결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대학을 산업계에 종속된 취업학교로 바꾸려 하고 있다. 산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기초과학이나 기초인문학은 이제 산소 호흡기를 떼야 할 형편이다.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는 기계부품과도 같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 알려진 지식, 정해진 규칙을 충실히 습득한 수동적 인재가 딱 어울린다. 이런 인재가 앞으로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과 경쟁이 될까. 알파고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무정형의 인재, 스스로가 필요에 따라 팔색조로 탈바꿈할 수 있는 플랫폼형 인재다. 그런 플랫폼을 구성하는 요소는 지금까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바닥을 다져 온 기초학문이다.

이공계인 전진배치가 단지 득표를 위한 얼굴마담용이 아니라면, 시대에 역행하는 정부정책들부터 되돌아보기 바란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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