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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도사(指導死)

입력
2017.10.22 14:5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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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핸드볼 선수들을 벌 주다 한 명을 의식불명에 빠뜨린 코치가 엊그제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에서 1심보다 1년 더 무거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이 코치는 학생들이 자신을 험담했다는 이유로 엎드려뻗쳐 자세로 벌을 주면서 머리와 배 등을 때렸는데 이 과정에서 한 학생이 뇌를 다쳐 아동학대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며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다는 피해자 어머니의 호소도 고려했다”고 가형 이유를 밝혔다.

▦ 학생이 다치거나 숨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학내 문제로 학생 간 폭력이나 따돌림과 함께 교사의 체벌을 꼽을 수 있다. 실제 폭력을 동반해 심각한 결과가 발생한 경우는 교사의 명백한 과실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지도 과정에서 반복해 심한 꾸중을 했다든지 하는 이유로 학생이 자살이라도 했다면 사망 원인을 분명히 입증하기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일본에서는 이런 일들이 서서히 늘어 ‘지도사(指導死)’라는 이름으로 사회 문제로 조명을 받고 있다.

▦ 지난 3월 후쿠이현 이케다초에서 중 2학년 남학생이 학교에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지역교육위원회 조사 결과 이 학생은 담임ㆍ부담임교사에게서 엄한 지도를 받거나 꾸중을 들어 스트레스가 컸고 그것이 숨진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학생은 숙제를 늦게 내거나 학생회 활동 준비 등이 늦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꾸중을 들은 뒤 심한 스트레스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가족들이 이를 학교에 문제제기 했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채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 이런 형태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만든 ‘지도사 부모 모임’ 조사에 따르면 2007~2015년 교직원 관련 고민으로 자살했다는 보고가 나온 사례는 10여 건이라고 한다. 이 단체는 ‘지도사’를 “부적절한 언행이나 폭력 등을 이용한 지도로 학생이 정신적인 압박을 받아 죽는 경우” “교육적인 배려 없이 교원이 자의적으로 그때그때 제재해 학생이 죽음에 이르는 경우” “장기간 신체를 구속하거나 반성, 사죄, 합리적이지 않은 벌칙 등을 강요해 그에 따른 정신적 고통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 등으로 정의한다. 사랑이나 배려 없는 훈육은 설사 매를 들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흉기가 될 수 있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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