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논설위원

등록 : 2018.04.26 20:45

[논ㆍ담] ‘J노믹스’ 1년, “이러다간 큰 일 난다”

등록 : 2018.04.26 20:45

저성장ㆍ일자리 위기 극복 위한 J노믹스

일자리ㆍ소득ㆍ혁신에서 모두 성과 못 내

집착하다간 경제 회복불능 상태 갈 수도

문재인 정부는 1년 전 출범 당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자임했다. 그건 ‘혁명적 변화’의 예고였다. 특히 경제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은 혁명적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급격했다.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세칭 ‘J노믹스’가 그런 변화의 깃발이 됐다.

하지만 출항 1년의 좌표를 지나고 있는 J노믹스의 항로는 결코 순탄치 않다. ‘사람 중심 경제’를 표방한 J노믹스의 핵심 이론은 ‘소득주도성장’이다. 기업을 육성하는 대신, 서민 가계와 개인의 소득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했다. 그러면 소비가 늘어 정체된 내수를 부양하고, 그 결과 기업 투자와 고용이 늘며, 그게 다시 가계와 개인의 소득증대로 이어지는 성장의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논리였다.

선순환 실현을 위해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문재인 정부 정책 1호로 설치됐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서민소득 증대책과 각종 현금성 복지책이 확대됐다. 성장정책도 미래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이끄는 혁신성장을 추구하는 형태로 전환됐다. 일자리,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정책이 J노믹스의 3대 축으로 추진됐다.

문제는 J노믹스 효과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효과는커녕 좌초의 불안한 그림자만 어른거리고 있다. 얼핏 보기엔 성장률 3%대 회복, 국민소득 3만 달러, 견고한 수출 증가세 등이 J노믹스를 뒷받침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착시 우려가 더 크다. 정부가 일자리를 그렇게 강조했건만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이 무색하게 소비심리는 5개월 연속 내리막 행진이다. 혁신성장 역시 정작 그걸 뒷받침할 규제완화법안들부터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꼼짝 못하고 있다.

J노믹스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정통 정책기획 관료로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관통하며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지낸 박병원 전 경총회장은 유연한 시각으로 우리 경제현실을 주시해온 인물이다. 박 전 회장과 지난 1년 간 J노믹스의 공과와 숙제를 짚어봤다.

박병원 전 회장은 “소득주도성장도 좋지만 왜 그보다 더 효과적이고 상식적이며, 실현 가능한 다른 정책들은 시도하지 않느냐”며 ‘J노믹스’의 현실적 보완을 촉구했다. 홍인기 기자

-이제 되짚어 볼 때가 된 것 같다. J노믹스든, 사람 중심 경제든 현 정부 경제정책은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하고 추진됐다. 당시 정책 전환이 추진된 배경과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현 정부 출범 당시 저성장과 일자리 정체, 양극화 현상 같은 문제가 있었던 건 맞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문제들이 현 정부 출범 때에 특별히 새롭게 부각된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앞선 두 정부 때도 그런 문제들은 계속 심화해 왔고, 나름대로 해결을 위한 정책도 모색됐다. 다만 현 정부는 앞선 정부들이 문제 해결에 실패했으니, 뭔가 새로운 접근법을 적용해 보려는 의욕이 강했던 것 같다. 화려한 수사를 제거하면 J노믹스의 핵심은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보는데, 그 목적 역시 궁극적으로는 성장동력을 살리는 것에 있었다고 본다”

-소득주도성장은 대기업과 부자들을 키워 그 ‘낙수효과’가 중소기업과 서민에 이르기까지 퍼지는 걸 기대해온 기존 경제정책과 달리, 서민 가계와 개인의 소득을 높여 소비를 진작하고, 소비 증가에 따라 투자와 고용이 확대되는 선순환을 겨냥한 정책이라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정책 전환은 적절했다고 보는가.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매우 많다. 다시 돌아가 보자. 현 정부 출범 이전부터 심화해온 문제들, 저성장이나 일자리 정체 같은 현상이 왜 일어났나. 나는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 때문이라고 본다. 내수 측면에서 보자면 기존의 재화나 서비스 공급은 이미 과잉이고 과당경쟁에 들어선 상태다. 예를 들어 누가 새로운 자동차 공장을 세울 거며, 누가 새로운 컴퓨터 공장을 만들겠는가. 이미 모두 충분한 상태라 더 이상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지기도, 새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수요도 마찬가지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육박하면 기본 수요는 거의 충족된 상태라고 봐야 한다. 돈 많다고 하루 다섯 끼 먹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이게 내수 정체의 본질이고, 그런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데, 정부가 별로 큰 효과를 낼 것 같지도 않은 소득주도성장에만 집착하는 게 안타깝다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 큰 효과 기대 어려워

공급과잉ㆍ수요부족 돌파가 관건

서비스업ㆍ농업 고도화 추진 필요

-소득주도성장정책이 공급과잉과 수요 부족을 해결하는 데 미흡하다는 이유는 뭔가. 그리고 현 정부가 그것에만 집착하는 게 문제라면 더 좋은 다른 방안이 있다는 얘긴가.

“소득주도성장정책의 골자는 기업과 부자들의 돈을 보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서민 가계와 개인의 주머니로 옮겨 주자는 얘기라고 본다. 그러면 한계소비성향의 차이만큼 소비가 늘어날 것이고, 그게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인데, 실제로 그런 효과가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당장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그렇다. 부자들 돈이 서민에게 갔는가. 기껏해야 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의 열악한 잠재수익이 최저임금 선상의 근로자들에게 갔을 뿐이다. 돈이 서민 주머니에서 서민 주머니로 옮겨 가는 데 그친 것이다. 그러니 소비가 늘어날 여지가 별로 없다.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같은 게 해소되거나 하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탁상공론에 그치기 십상이라 하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이 폐기돼야 한다는 얘긴가.

“지금 우리 경제상황은 찬물이든 더운 물이든 가릴 때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정책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다만 하더라도 일 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배 조정보다는 신규 고용창출에 전념하는 게 옳다. 또 하나, 왜 굳이 소득주도성장에만 매달리는가. 왜 그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상식적이며 실현 가능한 다른 방안들은 시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해 국내 가계의 해외 소비지출액이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여행과 유학연수에 쓴 돈이다. 한은에서는 경상수지 흑자 폭증을 막는 순기능도 있다지만, 나는 그걸 내국인의 서비스 수요와 일자리가 해외로 흘러나간 걸로 본다. 확대된 재정을 왜 현금 나눠주기 식으로만 쓰나. 국내 수많은 올레길, 둘레길 중간중간에 예쁘고 아담한 숙소가 들어설 수 있도록 민간을 지원하는 길은 없나. 적절한 조건 갖춰 산악 명소에 케이블카 놓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게 시장 만들고 일자리 만드는 것 아닌가”

-어쩌면 그런 게 민간 일자리 창출 방안일 수도 있겠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로 6만여 개의 일자리 창출 기회가 무산됐다는 최근 통계는 재정의 쓰임새와 역할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관광뿐만 아니다. 공급과잉이라 더 이상 투자할 곳이 없다지만, 공급의 질을 높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은 아직도 많다. 규제완화를 통해 의료, 교육, 금융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면 국내외에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여지가 아직 크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2003년부터 농산물 순수입국으로 전환됐다. 우리가 중국 농산물을 많이 수입하지만, 고급 농산물을 생산하면 급팽창하는 중국 부유층 시장을 얼마든지 공략할 수 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스마트팜(farm)’ 투자하겠다는 기업 있었고,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병원 투자계획들 있었지 않았나. 하지만 전혀 산업화의 길을 터주지 못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박병원(왼쪽) 전 회장과 장인철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J노믹스’ 1년의 공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정부ㆍ정치 이해갈등 조정과 설득 못해

규제완화 제자리 걸음 시급히 돌파해야

정부 경제팀 ‘상인적 현실감각’ 회복해야

-그렇게 보면 역시 규제완화가 문제이고, 정치가 문제다. 문 대통령도 입만 열면 규제완화를 얘기하지만, 규제완화 법안들은 꼼짝 못하고 있다. 당장 ‘규제샌드박스’ 입법만 해도 그렇다. 그게 전 정부의 ‘규제프리존 법안’과 충돌하고 있다. 여야가 서로 규제완화 생색을 내려다 보니, 상대 측이 제안한 법안을 일단 저지하자는 식으로 흐르고 있다.

“중국은 이미 G2로 확고히 부상했음에도 여전히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로서 공격적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되는 게 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정말 답답한 현실이다. 교과서적 정의, 기득권, 획일적 평등주의, 정치적 ‘표퓰리즘’이 물을 썩히고 있다. 규제개혁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기득권 지키기 때문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와 정부의 책임이 면해지는 건 아니다. 한미 FTA 체결 때처럼 보상을 하든 설득을 하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걸림돌을 제거하고 규제를 혁파하는 게 정부와 정치의 소임 아닌가”

-경제 문제의 ‘정치적 접근’이 빚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가 한계기업 구조조정 문제다. STX조선도 그렇고 한국GM도 그렇고 장기 경쟁력 강화보다는 일단 고용을 유지하고 보자는 땜질처방으로 넘어가고 있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나. 수십 만 명씩 대량실업이 벌어질 판국인데. 일단 아쉬워도 대량실업은 막아야 한다고 본다. 다만 수습책은 적어도 국민 다수가 납득할 만한 선이 돼야 한다. 한국GM 노사가 자구안에 합의했다지만, 여전히 국민 다수는 합의안이 ‘이해 당사자의 고통 분담’이라는 정부 지원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 월급쟁이 10명 중 4명이 20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는데, 그 몇 갑절이나 되는 연봉을 받으면서 기껏 본인 학자금 안 받겠다는 정도로 고통을 분담했다니 누가 납득하겠나”

-현 경제팀에 대한 말들이 적지 않다. 만연한 정책 엇박자를 비판해도 전혀 듣지 않는다는 걱정이 많다. 김동연 부총리를 비롯해 경제장관들은 들러리이고, 청와대 참모들이 주인이란 얘기도 공공연히 나돈다. 경제팀 문제를 어떻게 보나.

“밖에서 사람 얘기 하면서 흔들고 싶지 않다. 김동연 부총리 얘긴 하지 말자. 그 분이 어디 능력이 없는 사람인가. 굳이 말하라니 경제팀에게 건의하고 싶다. 부디 ‘상인적 현실감각’을 회복하기 바란다. 경제정책은 무엇보다 번영을 일구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본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경제의 지나친 정치화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혁신성장도 없다”

인터뷰ㆍ정리=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박병원 전 경총회장은

서울대 법대 학사와 석사를 거쳐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를 마쳤다. 다시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시 17회로 재경원 예산과장과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 재경부 1차관,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은행연합회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정부와 기업ㆍ금융계를 넘나들며 우리 경제의 한 복판에서 일해왔다. 경제정책에서 유연한 현실주의를 견지해왔다.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보수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부가 과도한 복지로 개인의 삶 전반을 책임지는 국가주의에는 반대한다. 국내외 들과 산을 다니며 수천 점이 넘는 꽃사진을 찍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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