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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아나키스트] 에너지 자립ㆍ탄소 제로 실험 6년 가파도 ‘절반의 성공’

입력
2017.11.25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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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력발전기 2대ㆍ태양광 49개로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율 43%

나머지는 디젤 발전기로 충당

#2

전시행정에 쫓겨 설치한 풍력은

발전기는 인도ㆍ축전지는 일본산

수리기간 길고 저장용량도 부족

#3

“가파도는 에너지 자립정책 나침반”

기후ㆍ인구 등 지역 조건 분석하고

발전량의 경제적 타당성도 따져야

에너지자립섬 1호로 알려진 제주 서귀포 가파도. 현재 전체 전략의 43%를 태양광, 풍력을 통해 얻고 있다. 가파도(서귀포)=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에너지자립섬 1호로 알려진 제주 서귀포 가파도. 현재 전체 전략의 43%를 태양광, 풍력을 통해 얻고 있다. 가파도(서귀포)=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율 43% 달성’ vs ‘탄소 제로라더니 아직도 디젤 발전’.

‘국내 1호 에너지 자립섬’을 표방하는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가 처한 현실은 이렇다. 2011년 11월 한국전력과 제주특별자치도가 손잡고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만 자급자족하는 ‘탄소 제로 섬(Carbon Free Island)’ 건설 사업에 착수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의 성과는 ‘아직 실험 중’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풍력(32%)과 태양광(11%)으로 공급하는 전력이 지난해 6월 기준 전체의 43%에 달해,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국가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 20%를 내건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비와 도비 143억 원이 투입되고도 아직도 57%를 디젤 발전이 책임진다는 현실은 비판적이다. 가파도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교훈과 숙제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현장이다.

“탄소제로” 6년 만에 43% 달성

서귀포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10분 남짓. 가파도가 가까워지면서 바람개비 모양의 높이 30m 풍력발전기 2개(개당 250㎾)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김동옥(62) 대정읍 가파리 이장은 “예부터 이 곳에서 정이월 바람쌀 검은암소 뿔 오그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임금님께 진상하는 검은 암소를 키웠는데 바람이 워낙 세서 소 뿔이 휘어질 정도라는 말이죠”라며 풍력발전의 적소로 꼽힌 배경을 설명한다. 이 쌍둥이 풍력발전기와 49개(3㎾ 48개, 30㎾ 1개)의 태양광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하면 섬 가운데 있는 한전 발전소로 모였다가 가정집, 마을회관, 초등학교 등에서 사용되고 나머지는 3.86㎿ 용량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쌓인다. 바람이 약하거나 세서 풍력발전기가 돌지 않거나 날씨가 흐리거나 눈, 비가 와서 태양광 발전기가 무력해질 때 꺼내 쓴다.

제주 서귀포 가파도 내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마이크로그리드 센터 모니터. 디젤발전기는 멈춰 있고 태양광과 풍력발전기로만 전기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가파도=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제주 서귀포 가파도 내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마이크로그리드 센터 모니터. 디젤발전기는 멈춰 있고 태양광과 풍력발전기로만 전기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가파도=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한전의 위탁을 받아 가파도 발전소와 마이크로그리드 센터를 운영 중인 JBC 김문봉 소장은 “ESS 저장량이 20%로 떨어지면 주의 표시가 뜨고 15%가 되면 디젤발전기가 가동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센터를 찾은 오후 1시30분에는 풍력발전기 1대와 태양광 발전기 49개가 시간당 151㎾h의 전기를 만들어 이 중 33㎾h를 충전 중이었다. 2대의 ESS 충전량은 각각 35%와 29%를 가리키고 있었고 디젤발전기는 멈춰 있었다. 디젤발전기 없이 태양광, 풍력만으로 6일 연속 전기 공급이 이뤄졌던 때도 있고, 16일 동안 디젤발전기에만 의존했던 때도 있다.

김 이장은 처음 3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태양광은 대체로 만족스러웠어요. 2012년부터 혼자 사는 노인 집처럼 전기를 많이 쓰지 않는 집 빼고는 대부분 태양광을 설치했습니다. 전체 설치비용(1,260만원) 중 10%인 120만원 정도를 각 가정에서 부담했는데 저도 태양광 달기 전에 보통 월 6만~7만원, 최고 10만원이 넘던 전기료가 월 1만원대로 줄었으니 2년 만에 본전은 뽑은 셈입니다. 하지만 풍력이 문제였습니다. 고장이 잦았고, 한 번 고장 나면 고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죠.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오고 청보리 축제를 찾아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왜 안 도느냐고 하니까 주민들 사이에서 섬 이미지만 나빠졌다는 불만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가파도에서 2013~2015년 3년 동안 풍력 발전기를 가동한 시간은 총 603시간으로,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하면 겨우 25일 가동됐을 뿐이다.

김동옥 가파도 이장이 풍력 발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파도=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김동옥 가파도 이장이 풍력 발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파도=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가파도 빠진 에너지 자립 사업

가파도의 풍력발전기는 인도 회사 시바의 제품이다. 전기를 저장하는 축전지는 일본 고베전기의 것이다. 고장이 나면 부품 공급이나 수리를 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용량은 더 문제였다. 맨 처음 설치된 축전지 용량은 860㎾. 250㎾짜리 풍력 발전기 2대가 돌아가면 축전지는 2시간도 안 돼 꽉 차버리고 추가로 생산되는 전력은 대부분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전력을 저장하거나 사용을 위해 다시 방출할 때 전압이나 직류/교류 등 전기특성을 변환시켜 주는 전력변환장치(PCS)의 용량은 고작 450㎾였다. “전기 공급이 불안정해서인지 풍력 달고 나서는 정전도 일어나고 가전제품이 고장나기도 했다”고 김 이장은 설명했다.

가파도의 설비 현황
가파도의 설비 현황

이 같은 총체적 참사는 애초부터 가파도 ‘탄소 제로 섬’ 사업이 친환경 이미지 구축을 위해 밀어붙이기 식으로 이뤄진 전시행정이었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2011년 사업 착수 당시 관여했던 한전 관계자는 “2011년 하반기에 제주도 측으로부터 사업을 제안받으면서 2012년 9월에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WCC) 전에 완공해 달라고 해 당황했다”고 말했다. 에너지 자립 섬 구축 시도 자체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터에 ▲필요 전력량 ▲일일 기상 변화의 장기 데이터와 이를 토대로 한 전력생산 예측 ▲전기 전송과 저장 시스템 등을 꼼꼼히 따져야 했지만 여유 없이 데드라인에 쫓겼다. 가파도를 에너지 자립 섬으로 만들겠다고 하면서 정작 가파도에 대한 고려는 빠진 것이다. 자연히 국내 대기업은 참여를 꺼렸다. “할 수 없이 해외 업체를 접촉했고 인도와 일본 회사를 설득해서 납품을 받았죠. 충분히 테스트할 여유도 없었고요.”

에너지 자립 섬으로 유명한 덴마크 본홀름섬 측이 2010년 가파도와 함께 ‘녹색 미래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한 후 세운 기념석.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에너지 자립 섬으로 유명한 덴마크 본홀름섬 측이 2010년 가파도와 함께 ‘녹색 미래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한 후 세운 기념석.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상황이 좀 나아진 것은 전력 생산량과 사용량에 따라 ESS와 PCS의 용량을 2014년 1㎿, 2016년 2㎿씩 늘리면서다. 한전 관계자는 “시행착오를 거쳐 신재생에너지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마이크로그리드)은 갖췄다”며 “ESS 용량이 지금의 2배(약 8㎿)가 되면 섬 전체가 3일 정도 쓸 전기를 저장할 수 있어 디젤발전기를 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은 문제는 20억원 이상이 소요될 예산 확보와, ESS 용량 확장 후 남아 돌 전기를 활용할 방안이다.

지역 기반 없이 밀어붙이기로는 실패

김동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정책위원은 “가파도는 진정한 에너지 자립으로 가기 위한 국가 정책의 나침반”이라고 설명했다. 정부ㆍ지자체ㆍ업계가 대규모 인프라를 쏟아부으며 신재생 에너지의 생산량만 늘리는 식의 에너지정책은 필패일 수밖에 없음을 입증하는 실례라는 것이다.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업대상의 조건을 철저히 분석해 사업 기획 자체가 지역 맞춤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 유인도(127개)의 절반 이상을 에너지 자립 섬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인데, 가파도의 교훈을 새기지 않는다면 장밋빛 미래는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6년도 결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에너지 자립 섬 사업은 전반적으로 디젤발전소 감축 효과가 작고 경제성이 떨어졌다. 2015년 말 민간투자로 사업이 완료된 인천 백아도, 전남 삼마도, 전남 상태도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수급 비율은 각각 59%, 26%, 23%에 그쳤고, 3개 섬의 운영 결손 18억3,600만원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농어촌전기공급 사업 예산으로 메웠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사업 계획 수립 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정확히 예측해 경제적 타당성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 제로 섬’이라는 구호가 탄소 제로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땅, 기후, 인구와 생활습관에 따른 지역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가파도=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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